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논설위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던 날 휴대전화의 속보를 보며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사법농단이란 해묵은 과제가 일단락됐지만 무언가 묵직한 게 짓누르는 듯했다. 그 묵직함의 뿌리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우선은 양승태 구속이 현 정권엔 양날의 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칼은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또 법원이 마지못해 전직 수장을 구속했지만, 바탕엔 ‘구체제 청산’이란 촛불의 요구가 깔려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 누구도 예외일 순 없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법정구속으로 이런 관측은 곧바로 현실화했다. 법원의 역습이니 심증에만 의존한 판결이니 하는 논란이 있지만, 권력 실세에게 매우 엄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봐야 한다. 유무죄 여부는 2·3심의 다툼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김경수 구속은 이 질문을 떠올린다. 촛불로 성립한 문재인 정권과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차이는 무엇인가? 현 정권은 여기에 답해야 한다. 야당과 보수 언론이 이전 정권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고 공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촛불을 들건 탄핵을 하건 ‘그놈이 그놈’이라고 하면 반사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손쉬운 예가 손혜원, 김태우 사건이다.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을 최순실의 미르재단과 동급으로 놓는 건 견강부회다. 둘은 비슷한 측면이 좀 있을 뿐 본질은 전혀 다르다. 김태우 사건 역시 민간인 사찰이라기보단 개인 비리에 가까워 보인다. 드루킹 댓글 사건은 좀 복잡하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은 권력기관이 주도했고, 드루킹 사건은 민간 주도에 권력 실세가 연결됐다. 민간과 권력기관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상당하지만 공론 훼손이란 점은 같다. 김태우, 서영교, 손혜원, 김경수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이 정권에 이전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있다. 구체제와 동색이 되어 비웃음을 살지, 신체제의 건설자가 될지 선택해야 한다. 호랑이 등에 탄 심정으로 구체제와의 결별을 가속화해야 한다. 첫째, 권력형 의혹 사건들은 가혹하다 싶게 다뤄야 한다. 대충 덮으면 나중에 사달이 난다. 2014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 청와대나 검찰이 최순실을 도려냈다면 이후 비극은 없었을 수 있다. 손혜원, 김태우 두 사건이 과거 비리와 다르다 해서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다시 들여다보고 파헤쳐서 모두 들어내야 한다. 둘째, 청와대,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 입법을 서두르는 한편, 구시대적 관행과 조직문화를 뜯어고쳐야 한다. 청와대부터 촛불의 기준에 부합했는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적폐청산의 칼날은 내 권력 안의 ‘신적폐’도 함께 겨눠야 한다. 셋째, 정치구조 선진화로 구체제로의 복귀를 차단해야 한다. 집권여당이 선거제 개혁, 개헌 등에 우물쭈물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정치개혁에서 이해타산을 따지는 건 근시안적 태도다. 촛불의 정치 선진화 요구를 과감히 제도화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로만 민주주의를 지킬 순 없다. 넷째, 이명박·박근혜 등 적폐의 우두머리급 인사들에겐 불관용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최소한 이 정권에선 사면복권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섣부른 사면으로 활개치고 다니는 전두환의 비극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대신 적폐에 가담한 하급자들에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다섯째, 내년 총선에서 정면승부를 본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치구조 쇄신, 평화체제 확립, 분배구조 개선이라는 대전제를 놓고 큰 싸움을 벌여야 한다. 적당히 줄타기하며 이 표 저 표 끌어모을 요량이라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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