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논설위원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 파장이 지속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와 고노 다로 외무상이 연일 격한 반응을 쏟아낸 데 이어 뮌헨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됐는지를 두고도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올해 통일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아베 정권이 ‘과잉 대응’을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 사죄를 거론했을 때도 일본 내 반발은 거셌다. 하지만 민주당 노다 정권의 직접 대응이 지금 같은 강도는 아니었다. 동시에 정부의 대응이 미약하고 언론이 크게 다루지 않는다는 일본 누리꾼들의 불만과 분노가 인터넷에 넘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위안부 합의, 강제징용 판결 등을 둘러싼 잇단 갈등 누적에 ‘일왕’이 원래 일본 사회에서 민감한 이슈라는 사정이 더해진 모양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난 2016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한국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주일 한국대사관 제공
1945년 패전 이후 미국의 비호 속에 에이급 전범 처벌과 이른바 ‘상징천황제’ 도입으로 일왕이 전쟁 책임을 면한 이래 일왕의 정치 관여는 금기시됐다. 일왕은 어떤 정치적 대립에도 흔들림 없는 ‘국민통합’의 상징 역할만 요구받을 뿐이다. “좋든 싫든 일본의 정치·사회 규범이 있는데 일왕 사죄 요구는 이에 대한 무지나 무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이유다. 특히 현 아키히토 일왕은 평가가 엇갈렸던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과 달리 서민적이고 겸손한 모습으로 ‘대중천황’ 시대를 열며 높은 국민 인기를 얻어왔다. 그런 일왕이 4월30일 생전 퇴위를 앞둔 지금, 일본인들의 감정은 상당히 복잡하다. 건강이 안 좋은데도 86살까지 전력을 다해온 데 대한 측은함과 애정, 전쟁 없이 ‘헤이세이 30년’이 저문다는 감회 등이 얽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전범의 아들’처럼 단칼에 베는 듯한 표현은 우파가 아니더라도 정서적 반감이 생길 수 있다”고 한 일본사회 연구자는 우려했다.
문 의장 발언이 이런 현실과 정서까지 깊이 고려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사과라고 하고 돌아서면 망언을 반복해온 일본의 정치권보다 차라리 일왕이 나서라는 한국인들의 심정을 일본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는 최근 레이더 공방과 뮌헨 회담의 진실공방에서 보듯,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인식을 공유 못 하는 불신의 악순환에 빠졌다. 누리꾼들 사이 공방이긴 하나 ‘국교 단절’ 같은 말도 쉽게 내뱉어진다. 돌파구를 열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얼마 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백년간 갈등을 빚은 아일랜드를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언급하며 재위 중이든 퇴위 뒤든 일왕의 방한을 기대한다고 밝힌 것도 그런 뜻일 게다. 전문가들은 ‘비현실적’이라 하겠지만 굳이 두번째 정상회담을 여는 북·미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국가 간의 관계는 때론 전문가들의 예측을 뛰어넘어왔다.
아키히토 일왕은 1990년 ‘통석의 염’이란 표현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선 불충분한 사죄로 비판받긴 했지만, 일왕의 정치관여를 금지하는 일본 헌법에 따라 ‘총리 사과면 충분하다’는 일본정부 입장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뜻에 따라 조율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백제 무령왕 자손’ 언급, 2005년 사이판의 한국인 위령탑 방문, 2017년 사이타마현 고구려 신사 방문 등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 표명해왔다. 특히 위안부는 전시하 여성 인권의 문제로 ‘정치적’ 여부를 따질 일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재위 마지막 생일 회견에서 그는 16분 내내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며 몇차례씩 목이 메었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이제 23명이다. ‘나눔의 집’을 찾는 일왕 부부의 모습을 그려본다. 꽉 막힌 한-일 관계에 ‘숨구멍’을 낼 상상력이 지금이야말로 필요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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