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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이토록 많은 ‘유관순들’ / 김영희

등록 2019-02-26 17:09수정 2019-02-26 21:34

“조선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곧장 대학을 나온 젊은 여성과 소녀가 투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듣는다면 너도 틀림없이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세계사편력>, 자와할랄 네루)

1919년 3·1운동은 조선의 여성들이 정치의 주체로 처음 나섰다는 의미 또한 갖고 있다. 당시 검거된 사람 중 학생과 교원이 2355명이었는데 그중 여교사와 여학생이 218명이었다. 여성 취학률이 남성의 100분의 1도 안 되던 때임을 생각하면 상당한 규모다.(<3·1혁명과 임시정부>, 김삼웅) 숫자만 중요한 게 아니다. 3·1운동 이후 여성들은 예외적으로 엄격한 집안이 아니면 쓰개치마, 장옷을 다 벗어던지고 만세를 불렀다. 여성에게 씌워졌던 억압을 벗어던진 상징적 장면인 셈이다.

조선에서 남녀의 교육기회 균등이 법적으로 부여된 건 1895년 반포된 소학교령. 20여년 사이, 여성들은 근대적 시민의식을 급속도로 내면화시켰다.(<한국 여성독립운동>, 박용옥) 1910년 발표된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자혜부인회의 규칙은 “하느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권을 주셨으나 상고야만 시대에는 교육이 펴지 못하고 지식이 열리지 못하야”로 시작한다. 황에스터가 도쿄 2·8 독립선언 대회를 앞둔 웅변대회에서 “여러분, 국가의 대사를 남자만 하겠다는 겁니까? 수레바퀴는 혼자서 달리지 못합니다”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비슷한 시기 길림에선 “겁나의(오래된) 구습을 파괴하고 용감한 정신을 분발하라”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나왔다. 당시 한 미션학교의 여학생들이 읍내를 돌며 시위를 하다가 제지하는 교장에게 했다는 발언 또한 인상적이다. “이제 모든 게 다 잘됐어요. 우리는 남자들이 분발하도록 했어요. 그들은 마음이 약해서 우리 여자들이 먼저 나서기를 바랐던 거예요. 이제는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겠죠.”

3·1 운동은 항일·독립뿐 아니라 평화·민주·평등의 가치 실현을 지향한 운동이었다. 임시정부가 발표한 임시헌장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3조와 9조에 남녀평등과 공창제 폐지를 명시한 사실은 모르는 이들이 많다. 26일 유관순 열사에 대한 최고 훈장 추서를 계기로, 당시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조건을 고려해 여성들에 대한 더 적극적인 발굴과 조명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독립유공자 1만5천여명 중 여성은 357명으로 2.4%에 불과하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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