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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자유한국당의 ‘피해자 코스프레’ / 신승근

등록 2019-03-12 18:54수정 2019-03-12 21:03

신승근
논설위원

자유한국당 의원 113명이 의원직을 던지고 거리로 뛰쳐나가면…. 헛된 근심이다. 일단 가능성이 희박하다.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선거법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자 자유한국당은 목청을 높인다. 표심 왜곡, 제1야당 말살, 의회 쿠데타…. 의원직 총사퇴도 공언했다.

본말을 뒤집은 ‘피해자 코스프레’다. 현재 고립은 자유한국당이 자초한 ‘자발적 왕따’다. 그들의 버티기에 늑장 출범한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선거법을 본격 논의한 지 다섯달째다. 자유한국당은 제대로 안을 낸 적도 없다. 그동안 정치권과 중앙선관위는 국민의 지지만큼 의회 권력을 배분해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과잉대표되는 걸 막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현실적 최대공약수가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확대’다. 지난해 12월15일 여야 5당 합의문 제1항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명시한 이유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서명했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다. 분노할 쪽은 여야 4당이다.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여당 2중대 만들기” 음모로 규정한다. 제 밥 한술 나눠줄 수 없다는 제1야당보다, 지역구 줄여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여당 제안에 끌리는 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의원 설득을 위해 공수처법 등 개혁법안도 패스트트랙에 함께 태우자는 민주당 요구를 외면할 수도 없다. 받는 게 있으면 명분 있게 내주는 게 정치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마지노선으로 정한 지난 10일 뒤늦게 ‘비례대표 폐지, 의원 정수 10% 감축안’을 불쑥 꺼낸 나 원내대표는 여론전을 펼친다. 국민 뜻에 따라 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현재보다 30석 감축했단다. 정치혐오에 기댄 ‘역주행’을 선행으로 포장한 교묘한 선동이다. 사표를 줄여 비례성을 강화하라는데 비례대표는 아예 없애고, 사표를 늘리는 지역구 의원만 17석 증원한 게 자유한국당 안의 본질이다. 20대 총선에서 33.5%의 정당지지율을 얻은 자유한국당이 의석의 40.7%인 122석을 가져간 ‘기득권 독식 구조’를 더 강화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고사시키려는 잔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런데 대통령을 ‘물태우’로 부르며 30여년 공백을 넘어 지방의회 선거를 하고 국회 청문회가 활짝 꽃핀 13대 국회(1988~1992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추진된 2004년, ‘박근혜 탄핵안’을 의결한 2016년, 모두 다당제 속 여소야대 국회였다. 국민 다수가 “금배지는 믿을 수 없다”며 시기상조라는 내각제 개헌을 연동형과 연계하는 건 선거법을 손댈 수 없다는 선언일 뿐이다.

패스트트랙을 ‘의회 쿠데타’로 규정한 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해머로 문짝을 부수고 법안을 날치기하던 ‘몸싸움 국회’를 없애고 알박기식 법안 지연을 피할 출구를 열어준 게 패스트트랙이다. 상임위 위원 5분의 3 이상이 지정한 ‘신속처리 안건’을 최장 330일 이후 본회의에 자동상정하는 건 국회법이 규정한 합법 절차다. 그게 쿠데타라면, 지금이 ‘쿠데타’가 필요한 때다. 공직선거법상 총선 1년 전인 오는 4월15일까지 선거구를 획정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선의만 기다리는 건 어리석다. 일단 패스트트랙에 태워야 그들도 좀 더 현실적인 개정안을 낼 것이다.

의원직 총사퇴를 실행하면…, 굳이 말릴 필요 없다. 기득권을 박차고 사퇴할 의원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지만, 그렇게라도 새판을 짤 수 있다면 자유한국당이 정치발전에 기여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총사퇴, 그 약속 이번엔 꼭 지키시라’는 누리꾼 조롱이 넘쳐나는 이유다.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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