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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입장 바꿔 생각해봐, 인사청문회 / 신승근

등록 2019-04-02 17:19수정 2019-04-02 18:46

인사청문회의 원조는 미국이다. 1787년 헌법 제정 당시 의회의 대통령 견제 수단으로 도입했다. 청문 대상 공직이 1200여개에 이르고, 행정부 장차관과 차관보 이상 고위공직자 등 요직 600여개는 상원 인준 동의 없이 임명할 수 없는 ‘인준 필수직’이다. 그런데 지난 230년 동안 청문회를 통과 못 한 후보자가 12명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을 만큼 낙마는 예외적 ‘사건’이다. 청문회 전 검증에서 철저히 걸러내기 때문이다.

백악관 인사실이 예비후보를 추리면 법률보좌관실 주도로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정부윤리실 등이 재산·납세·전과 등을 샅샅이 살핀다. 연방수사국은 ‘국가안보지위를 위한 질문서’에 상세 답변을 받아 후보자의 거주지까지 훑으며 2~3개월 동안 정밀검증한다. 대통령은 이 검증을 통과한 인사만 인사청문을 요청한다. 청문위원회가 요구하면 연방수사국 검증자료까지도 공유한다. 정책과 자질 검증에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이다.

멕시코, 브라질, 칠레 등 남미의 대통령제 국가도 인사청문회를 한다. 대개 장관보다 외교관, 대법관 등이 대상이다. 내각제 국가 가운데는 2008년 영국이 사전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가 내각 권한을 제한하고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영국의 거버넌스’라는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개혁안에 따른 것이다. 특징은 각 부처 장관이 아니라, 그들이 임명하는 산하 2만여개 공직 가운데 국민 이익 보호를 위해 의회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60여개 공직을 청문 대상으로 정했다는 점이다. 하원이 청문회를 하지만 장관의 임명권에 대한 비토권은 거의 없다. 2010년 재무부 산하 예산책임처장과 2명의 위원, 통화정책위원회 위원, 영국중앙은행 산하 재정정책위원회 위원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의회의 비토권을 인정했을 뿐이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월 처음 인사청문회를 도입했다. 헌법에 의해 국회의 임명동의를 요하는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국회에서 선출하는 헌재 재판관 및 중앙선관위원으로 대상을 제한했다. 2003년 국가정보원장·국세청장·검찰총장·경찰청장을 추가했고, 2005년엔 국무위원 전원과 대통령 및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재 재판관 중앙선관위원으로 넓혔다. 여섯 차례 법 개정을 통해 한국방송 사장·방송통신위원장까지 현재 청문 대상 공직만 57개로 확대했다.

국회 인준 투표가 필요한 총리, 헌재소장은 야당의 주요 표적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 인준안이 부결됐다. 박근혜 정부에선 김용준·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중도 탈락했다. 2000년 이후 청문회를 거친 공직 후보자 348명 가운데 무려 31명이 낙마했다.

개각 때면 어김없이 논란이 반복된다. 여당은 신상털기식 청문회 탓에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며 도덕성을 검증하는 비공개 청문회와 업무 능력을 따지는 공개 청문회를 분리하자고 주장한다. 야당은 청와대의 부실검증을 비판하며 되레 청문기간 연장 등을 요구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의 이런 입장도 180도 뒤바뀐다. 결국 정치 공방만 무한 반복된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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