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는 안전도 높은 교통수단이지만, 유사시 전원 사망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항공 안전을 획기적으로 높인 계기는 1944년 시카고조약이다. 잦은 사고로 항공기 탑승이 두렵던 시절, 각국 항공사들이 사고 조사 양식을 통일하고 공유하기로 한 조약이다. 이후 어디에서 항공 사고가 터져도 상세한 조사와 공유가 이뤄졌고, 업계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항공 사고는 업계 밖에도 영향을 끼친다. 1983년 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는 이듬해 미국의 위성항법시스템(GPS) 민간개방 결정을 이끌었다. 1997년 대한항공기 괌 참사는 조종사 간 의사소통 실패가 원인임이 밝혀져, 대한항공 조종실 내 대화가 존대법 없는 영어로 바뀌게 됐다. 2013년 아시아나 샌프란시스코공항 방파제 충돌 사고는 자동운항장치에 길들여진 조종 과실로 드러나, 자동화에 대한 경고로 이어졌다. 2015년 독일 저먼윙스 알프스 추락 사고는 조종사의 자살비행임이 밝혀져, 이후 조종실 내 2인 승무제가 의무화됐다. 비행의 최대 위험요인은 사람이라는 걸 일깨웠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가 2017년 출시한 보잉737맥스8은 346명이 숨진 연쇄 추락사고로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보잉737맥스는 1960년대 디자인과 1990년대 컴퓨터 시스템, 종이 매뉴얼로 이뤄진, 최신 모델이라는 명칭의 구닥다리였다. 경쟁사 에어버스의 A320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급조한 ‘과거의 유물’이었다.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들은 하강하는 기수를 끌어올리려 조종간을 당겼지만 고집스러운 기계와의 싸움에서 졌다. 보잉은 사고 이후 오류를 수정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모든 상황을 사전점검하지 않고 출시했음을 알려준다. 프로그램이 복잡해지면서 가능한 모든 경우를 사전점검하는 게 어려워져 확률적 안전성에 기대고 있는 현실이다. 전통 방식의 프로그램과 인공지능의 결정적 차이는 경험하지 않은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뛰어난 예측능력으로 경험하지 않은 상황도 매끄럽게 처리해 효율성과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기술에 의존할 때의 결과를 항공기 추락 사고는 알려준다.
구본권 미래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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