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의 50주기를 맞아, 이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에 공감한 아나키스트로서 신동엽은 서른아홉에 요절할 때까지 총칼이 맞서는 한반도를 평화공동체로 바꾸는 꿈을 시로써 그렸다. 신동엽의 역사관이 가장 장대하게 펼쳐진 시는 <금강>이지만, 이 시인의 꿈과 뜻이 간결한 언어로 응축된 시는 <껍데기는 가라>일 것이다.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단호한 외침은 부정의 시인정신이 빚어낸 절창이다. 특히 이 시의 3연에 등장하는 ‘중립의 초례청’이라는 시어는 그 강렬한 상징성 덕분에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초례청은 신랑과 신부가 혼례를 치르는 장소이니, 이 초례청에서 남과 북이 만나는 것이야말로 4월혁명의 알맹이를 거두는 일임을 이 시는 암시한다.
이 ‘중립’이란 말의 의미는 4년 뒤에 쓴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과 함께 읽으면 더욱 명료해진다. 여기서 시인은 ‘중립지대’와 함께 ‘완충지대’, ‘평화지대’라는 말을 번갈아 쓰는데, 이 말들은 처음에는 휴전선 일대의 ‘비무장지대’를 뜻하다가 마지막에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사랑 뜨는 반도”로 의미가 넓어진다. 그 이미지가 <껍데기는 가라>의 4연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와 연결돼 있음은 분명하다. 모든 쇠붙이, 곧 무기와 강권은 껍데기이며, 향그러운 흙가슴, 평화의 대지야말로 알맹이임을 이 시는 천명한다. 당대의 시인 김수영은 <껍데기는 가라>를 평하며 이 시가 ‘민족의 정신적 박명’을 암시하고 있으며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해준다고 썼다. 신동엽의 문학적 상상력은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을 앞에 두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고 한 연설을 통해 정치적 현실성을 얻었다. 남과 북이 맞절하는 ‘중립의 초례청’도 마침내 이 땅의 현실이 될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