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시인 신동엽과 ‘중립의 초례청’ / 고명섭

등록 2019-04-14 16:59수정 2019-04-15 10:10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의 50주기를 맞아, 이 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크로폿킨의 상호부조론에 공감한 아나키스트로서 신동엽은 서른아홉에 요절할 때까지 총칼이 맞서는 한반도를 평화공동체로 바꾸는 꿈을 시로써 그렸다. 신동엽의 역사관이 가장 장대하게 펼쳐진 시는 <금강>이지만, 이 시인의 꿈과 뜻이 간결한 언어로 응축된 시는 <껍데기는 가라>일 것이다.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단호한 외침은 부정의 시인정신이 빚어낸 절창이다. 특히 이 시의 3연에 등장하는 ‘중립의 초례청’이라는 시어는 그 강렬한 상징성 덕분에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초례청은 신랑과 신부가 혼례를 치르는 장소이니, 이 초례청에서 남과 북이 만나는 것이야말로 4월혁명의 알맹이를 거두는 일임을 이 시는 암시한다.

이 ‘중립’이란 말의 의미는 4년 뒤에 쓴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과 함께 읽으면 더욱 명료해진다. 여기서 시인은 ‘중립지대’와 함께 ‘완충지대’, ‘평화지대’라는 말을 번갈아 쓰는데, 이 말들은 처음에는 휴전선 일대의 ‘비무장지대’를 뜻하다가 마지막에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사랑 뜨는 반도”로 의미가 넓어진다. 그 이미지가 <껍데기는 가라>의 4연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와 연결돼 있음은 분명하다. 모든 쇠붙이, 곧 무기와 강권은 껍데기이며, 향그러운 흙가슴, 평화의 대지야말로 알맹이임을 이 시는 천명한다. 당대의 시인 김수영은 <껍데기는 가라>를 평하며 이 시가 ‘민족의 정신적 박명’을 암시하고 있으며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해준다고 썼다. 신동엽의 문학적 상상력은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을 앞에 두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고 한 연설을 통해 정치적 현실성을 얻었다. 남과 북이 맞절하는 ‘중립의 초례청’도 마침내 이 땅의 현실이 될 것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