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년 전 시위’ 키워드로 본 6월항쟁) 이날 사과탄이 터지는 가운데 경찰의 발길질과 주먹질에도 맨몸으로 “독재타도”를 외치며 버티는 학생들의 모습에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고 경찰에 야유를 보내거나 항의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오픈아카이브가 이 장면을 “6·10 민주항쟁의 예고편”이라고 소개해놓은 이유일 게다. 그다음 해인 88년엔 대학가에 통일운동이 번지며 판문점으로 향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뜨거웠다. 서울 홍제동에선 몇만명의 학생들이 거리에 누워 남북 청년학생 회담을 요구했다. 1991년 전경들의 집단구타로 숨진 강경대 치사사건 규탄대회의 참가자들은 천으로 서로 몸을 묶고 도로에 누워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학생 시위는 물론 노동자들이나 장애인 시위 등에도 연와시위는 등장하게 됐다. 분명한 것은 늘 연와시위는 권력의 탄압에 맞선 소수자와 약자의 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지난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상임위 회의장 앞에 누워 “독재타도, 헌법수호”를 외쳤다. 수십년 전 어디에 있었는지 따지겠다는 건 아니다. 특정 시위방식이 어느 세력의 전유물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선거법 개정에 어깃장을 놓은 거대 야당의 시위 방식치고는 너무나 생소했다. 연와시위에도 염치가 있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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