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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보수의 정신, 보수의 민낯 / 백기철

등록 2019-05-13 17:19수정 2019-05-13 19:09

2차대전 이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을 정립한 러셀 커크는 그의 책 <보수의 정신>에서 보수주의의 핵심으로, 획일성과 평등이 아닌 다양성의 확산, 문명화된 사회는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라 질서와 계급을 요구한다는 확신,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신념 등 6가지를 들었다. 냉전이 본격화되던 1953년 내놓은 것이어서 다소 거칠지만 보수의 원류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보수의 시조’로 불리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1790년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프랑스혁명의 급진성에 맞서 영국의 헌정체제를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버크에게 보수주의는 자유와 질서에 가장 우호적인 체제인 영국 헌정 체제를 지키는 것이었다.

‘과거’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영국 보수당이 200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존속해온 이유는 뭘까? 강원택은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에서 권력에의 열망, 유연성, 외연 확장 등을 이유로 들었다. 영국 보수당은 권력을 잡는 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교조적 독단이나 수구반동보다 변화하는 현실에 자신을 맞췄다. 때때로 자유당이나 노동당 정책을 수용했고, 노동계급을 위한 사회개혁도 적극 추진했다.

한국의 보수는 어떤가? 정상모는 <보수혁명론>에서 한국 보수주의는 서유럽처럼 자유주의 사상 확산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반공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고 썼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일관되게 설명할 철학적·정치적·정책적 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반공 이념과 ‘북한 악마화’로 조성된 적대감을 바탕으로 정치적 경쟁세력을 ‘좌파’로 몰아 권력을 잡는 집권전략이 있을 뿐이다. 한국 보수는 말은 보수지만 별로 지킬 게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 이후 보수의 쇄신은 한국 보수가 정말로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경쟁자에게 대놓고 색깔론을 들이대는 자유한국당의 최근 모습은 한국 보수의 익숙한 민낯만 보여줄 뿐 보수의 쇄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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