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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민생과 개혁, 책임감과 실행력이 부족하다

등록 2019-05-15 16:56수정 2019-05-15 19:06

김지석
대기자

“큰 방향은 무난하지만, 책임감과 실행력이 떨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두돌을 맞았다. ‘문재인 초기’의 끝이자 중기의 시작이다. 분기점이 되는 사안으로는 4월 말 선거법개혁안·사법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과 2월 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실패를 꼽을 수 있다. 중기는 내년 4월 총선이라는 고비를 넘으면서 후기로 넘어갈 것이다.

초기에 대한 평가는 밋밋하다. 50% 안팎의 국정 지지율이 낮은 것은 아니나 상당한 실망이 깔렸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 관계 등 한반도 관련 이슈와 촛불혁명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인 적폐 청산에서는 분명 성과가 있다. 다른 분야에서는 크게 내세울 게 없다. 경제 상황이 꼭 정부 탓은 아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뚜렷해진 것은 태극기부대와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극우·보수 세력의 저항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를 돌아보면, 이들의 움직임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정권 초기에는 새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노무현 정부 때는 대선 결과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밀어붙였다. 총선에서 집권당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하고 헌재 결정을 통해 탄핵이 무산되면서 노무현 초기가 마무리됐다. 지금의 극우·보수 세력 역시 문재인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새 길을 찾는 대신 과거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군사정권 시절 기득권 세력의 한 축이었던 공안검사의 목소리를 그대로 토해낸다.

문재인 중기의 최우선 과제는 꾸준한 개혁을 통해 민생을 개선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다. 책임감과 실행력이 가장 요구되는 분야가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정책 기조를 설정한 경제 분야다. ‘소득주도’와 ‘공정’은 사회·복지 분야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득이 성장을 주도하려면 소비 행태를 바꿀 정도로 수입이 눈에 띄게, 지속해서 늘어야 한다. 자연적인 경기순환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사실상 긴축을 해온 재정정책을 확장 쪽으로 바꾸고 정부의 소득재분배 구실을 강화해야 이룰 수 있다.

공정한 경제가 되려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직접 생산자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 비정규직 권리 보장, 노사 관계 활성화 등을 미룰 이유가 없다.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를 강화하는 것 역시 공정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경제의 토대가 된다.

책임감·실행력 강화는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도 중요하다. 비핵화-평화체제 문제를 북-미 협상에 모두 맡겨버리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핵 문제의 직접 당사자로서 독자 방안을 갖고 관련국들의 행동을 끌어내야 한다. ‘1인당 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인 7번째 나라’라는 위상을 자랑만 할 일이 아니다.

중기 상황이 초기보다 좋을 거라고 볼 수는 없다. 과거 노무현 중기는 여당이 국회 다수당이 됐는데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4대 개혁입법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하자 노 대통령은 보수 세력과의 타협을 시도한다. 갑작스러운 대연정 제안과 속전속결식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 선언이 대표 사례다. 이를 계기로 노무현 정부는 변화보다 기존 구조의 유지와 부분적 개선에 치중하는 후기로 들어간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그럴수록 타협과 거리를 둔다. 뉴라이트로 이름을 바꿔 세력을 결집하고 거리시위를 강화해 노무현 정부를 무력화하는 쪽을 택한다. 태극기부대의 원형인 아스팔트보수가 이 시기에 본격화한다.

지금의 극우·보수 세력도 비슷한 행태를 보일 소지가 다분하다. 문재인 정부 무력화를 목표로 직접 행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온다. 물론 좌표 재설정에조차 관심이 없는 지금 극우·보수 세력의 재생산 기반은 과거 노무현 정권 때보다 좁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이들 쪽이 아니다.

대화 정치를 하되 개혁의 기본 원칙은 지켜나가야 한다. “관료가 말을 잘 안 듣는다. 집권 2주년이 아니고 4주년 같다”는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최근 발언은 책임감과 실행력 부족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른 채, 새로 뽑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사담처럼 한 말이라 해도 마음가짐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제대로 해보지 않고 남 탓만 해선 할 수 있는 일도 못 한다. 굳이 촛불혁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민생과 개혁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책임 있게 실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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