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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형용모순 / 김진해

등록 2019-05-26 15:57수정 2019-05-26 19:19

1980년 5월 27일 새벽 신군부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싸운 시민들이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전남도청 마당에 엎드려 있다.5·18기념재단(김녕만) 제공
1980년 5월 27일 새벽 신군부에 대항해 마지막까지 싸운 시민들이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전남도청 마당에 엎드려 있다.5·18기념재단(김녕만) 제공
아무래도 인간은 복종보다는 삐딱한 쪽을 선택한 듯하다. 말에도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이 날카롭게 맞서는 형용모순이란 것이 있다.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표현이 그 예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당신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동그라미를 네모나게 누르거나 네모를 동그랗게 당기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표현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한다. 모종의 진실을 담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맞이하여 ‘침묵을 듣는 이’에게 강으로 오라고 청할 수 있다. ‘눈뜬장님’과 함께 ‘산송장’이 된 친구의 병문안을 갈 수도 있다. 형용모순은 생활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시마 육수’에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닭개장’에는 개고기가 없다. 어느 냉면집에선 ‘온냉면’을 끓여 판다. ‘아이스 핫초코’는 땀을 식혀준다.

종교에 쓰인 형용모순은 반성 없는 일상에 대한 각성의 장치다.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다. 부처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고 부처가 없으면 더 냉큼 지나가라. 예수는 원래 하나님이셨지만 자신을 비워 사람이 되었다. 가난하고 비통한 사람은 복이 있다!

이런 형용모순도 있다. 가령, ‘시민군’. ‘시민’이면서 ‘군인’. 비극적 결합이다. 총을 만져본 적도 없는 학생들도 있었다. 39년 전 오늘, 새벽 도청의 시민군은 계엄군에게 모두 사살, 체포되었다. 진압 후 계엄군은 능청스레 광장 분수대 물을 하늘 높이 솟구치도록 틀었다고 한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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