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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 문 대통령에게 한-일 관계의 공간을 줘야 한다

등록 2019-05-27 16:59수정 2019-05-27 19:28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위안부 문제 졸속 타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움직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움직일 공간을 줘야 한다.
한-일 우호의 단단한 기반이 됐던 ‘한-일 관계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두 주인공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 자료사진
한-일 우호의 단단한 기반이 됐던 ‘한-일 관계선언-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두 주인공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 자료사진

한국-일본 관계가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다. 일본은 오는 6월28일 자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 때문에 한-일 양자 정상회담을 생략하는 방안까지 구상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우경화에 근본 책임이 돌려진다. 일본은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후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 등으로 동아시아를 자극해왔다. 아베 신조 총리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진 뒤 ‘북한 때리기’로 집권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2년 9월 파격적인 북한 방문과 북-일 공동선언을 했다. 아베도 취임 초기에는 한국의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고 한-일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인물이다.

일본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에 맞서 한국을 편입시킨 미-일 동맹이라는 기존 구도의 강화가 필요하면서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등을 통한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 제고도 절실한 현상 변경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정점에 오른 한-일 관계가 악화된 기본 연유는 일본의 이런 국내외 사정 때문이기는 하다. 우리도 일본의 이런 사정을 이용하기보다는, 일본을 한쪽으로만 밀어붙이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대표적인 게 2012년 8월10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뜬금없는 독도 방문이다. 그는 더 나아가 광복절 전날에 일왕도 “한국 방문을 하고 싶어 하는데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할 거면 오라고 했다”며 “통석의 염, 뭐 이런 단어를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언행은 한-일 관계를 규정하던 암묵적 관행이나 원칙 두가지를 해체하는 계기가 됐다.

첫째, ‘미해결의 해결 간주화’다. 한-일은 회담 막바지인 1965년 1월 독도에 대해 “해결하지 않는 것을 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조약(한-일협정)엔 언급하지 않는다”는 밀약을 맺었다. 이는 한국이 합의하지 않는 한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일본이 변경할 수 없으면서도 서로의 체면을 살린 구조다. 다른 한-일 분쟁사안에 대한 관행이기도 하다.

사실 ‘미해결의 해결 간주화’는 국제사회의 분쟁사안에서 자주 적용되는 외교적 타협 원칙이기도 하다. 분쟁사안에 대해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견지하나, 기존 상황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1970년대 말 국교 정상화를 할 때에 당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은 100년 뒤에나 거론하자며 일본 쪽에 양보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독도 등 분쟁사안에 대한 ‘미해결의 해결 간주화’를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둘째, 따라서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모드는 ‘사과’로만 작동하지 않게 됐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일왕의 과거 사과 발언을 깎아내리며 재사과를 요구하자 일본에서는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는 여론이 진보·자유 진영에서도 일었다.

독도 문제가 악화된 배경도 동아시아 정세에 있다.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를 놓고 중-일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 대립하기 시작해 2004년에 변곡점을 맞았다. 중국의 민간인들이 센카쿠열도에 상륙하자 일본이 체포로 대응했다. 일본의 영토 분쟁 문제는 전방위로 확산됐다.

그해 독도 해역에서 탐사 활동을 하던 한국 탐사선에 대해 일본 순시선이 중단을 요구해 대치가 벌어졌다. 2005년에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겨냥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조용한 대응을 포기하는 ‘대일 신독트린’을 선언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영토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광복을 부인하는 역사 문제’라는 강경 발언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8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쉬우나 뒤에 나타나는 결과는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다.

한-일 관계는 악화될 만큼 악화됐다. 양국의 정치인과 지식인 사이에서 한-일 관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게 그 증거다. 이 전 대통령의 패착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위안부 문제 졸속 타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움직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움직일 공간을 줘야 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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