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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미-중 이전투구의 시대, 그림자와 기회

등록 2019-06-05 15:57수정 2019-06-06 10:05

김지석
대기자

“중국과의 경쟁은 그동안 미국이 경험하지 못한 정말 다른 문명, 다른 이념과의 싸움이다. 우리가 백인이 아닌 대국 경쟁자를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다.”(카이런 스키너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중국 때문에 대통령이 됐으며, 제조업 중심지 러스트 벨트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2020년 대선의 핵심 이슈는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될 것이다.”(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중국은 경쟁 국가를 먹잇감으로 삼아 제조업 기반을 성장시킨다. 대표적 먹잇감이 바로 미국이다. 우리는 중국이 미국의 주권을 존중할 때까지 압박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마이크 펜스 부통령)

미국 쪽에서 볼 때, 지금 진행되는 미-중 경제전쟁은 서구문명과 비서구문명의 충돌이자 지배세력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나라의 운명까지 건 것이다. 트럼프 정부 초기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들도 갈수록 강경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연설에서 “한 문명의 절대적 권위는 지속적인 대화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며 “모든 문명에 완전함이 있고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중심주의나 서구중심주의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뜻이다.

경제 패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험한 싸움은 이미 문턱을 넘어섰다. 무역갈등과 관세전쟁이 부각되고 있지만 그 밖에 네 영역이 더 있다. 첨단기술, 기술 기준, 인프라, 금융이 그것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승부가 날 때까지 갈등이 이어질 것이다.

첨단기술은 미-중 대결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주도 기술발전 계획인 ‘중국제조 2025’의 폐기를 압박하지만, 중국은 주권과 체제에 대한 간섭이라며 굽히지 않는다. 미국이 보기에, 중국이 세계 정보통신 산업을 주도하는 구글, 페이스북 등의 중국 내 활동을 제약하고 알리바바, 텐센트 등 국내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에는 자국 기술 기준을 확산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실제로 중국이 주도하는 휴대전화 간편결제 서비스는 기존 신용카드 체제를 위협한다.

인프라 분야에서는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으로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 사업은 미국의 방해를 비롯한 우여곡절에도 꾸준히 진척되고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과 더불어 출범시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달러 패권에 맞서는 금융 분야 도전이다. 중국이 미국의 이란 봉쇄에 맞서 자국 화폐를 통한 이란 석유 거래를 본격화할 수도 있다.

중장기 전망은 미국 쪽에 유리하지 않다. 우선 미국이 경제전쟁을 벌이게 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인 엄청난 규모의 무역적자를 줄이기가 쉽지 않다. 각국에 압력을 가해 적자 수치를 잠시 낮추더라도, 미국의 경제 체질이 밑에서부터 바뀌지 않는 한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이 늘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도 경제전쟁으로는 풀 수 없다.

미국은 우군 확보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사실상 지구촌 모든 나라와 무역갈등을 빚는다. 적으로 설정해 정면 대치하는 나라만 해도 중국·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북한 등 다섯이다. 미국 내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에 대한 반대가 찬성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는 오히려 격차가 더 크다.

경기동향도 중요한 변수다. 경제전쟁이 미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없거니와 경제전쟁으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가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내년쯤부터 2008년 위기 때보다 더 심한 대침체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누가 이기는지와 무관하게 경제전쟁 자체가 세계 경제에 큰 짐이 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의 이전투구를 중재하거나 균형자 구실을 할 힘은 없다. 섣부르게 어느 한쪽 편에 설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부 개혁과 유연하면서도 강한 외교를 통해 정세를 관리하고 상황 악화를 막을 여지는 있다.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대외 관계를 다양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협력과 공존·공영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은 명분에서나 실리에서나 우리에게 좋다.

미국 대외정책에서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가 떨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흘려보내선 안 된다. 미-중 갈등이 남북의 운신을 제약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관련국 사이 협력이 미-중 대결을 완화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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