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우리는 언어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이다. 태어나자마자 따라야 할 말의 규칙들이 내 몸에 새겨진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언어의 찐득거리는 점성을 묽게 만들어야 한다. 시는 우리를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맨 기성 언어를 교란하여 새로운 상징 세계로 날아가게 하는 로켓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다. 하여 진부한 기성 언어에 싫증이 난다면 ‘짝퉁’ 시인이 되어보자. 쉽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명사와 동사를 다섯개씩 써보라. 이를테면 ‘바람, 하늘, 망치, 구두, 숟가락’ ‘두드리다, 먹다, 자르다, 깎다, 튀다’. 이들을 맘대로 섞어 문장을 만들라. ‘바람이 하늘을 두드린다’ ‘구두가 망치를 먹었다’ ‘숟가락이 바람을 잘랐다’ 식으로. 이러다 보면, 근사한 문장 하나가 튀어 오른다. 그걸 입안에서 오물거리다가 옆 사람한테 내뱉어 보라. “저기 바람이 하늘을 두드리는 게 보이나요?” 그러곤 한번 씩 웃으면 끝. 시인은 문법과 비문법의 경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광대다. 문법에 얽매이면 탈주의 해방감을 영영 모르며, 비문법에만 탐닉하면 무의미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문법과 비문법, 질서와 무질서, 체계와 비체계 사이에 서는 일은 언어의 가능성을 넓힐뿐더러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도모하는 수련법이다. 이렇게 자신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유연한 자세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새롭고 싱싱한 언어들로 채워질 것이다. 얕은 수법이지만, 반복할 수만 있다면, 누가 알겠는가, 당신 안에서 시인이 걸어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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