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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리스펙트] 댓글, 그 차별의 일상 / 홍진아

등록 2019-06-09 16:47수정 2019-06-09 19:46

악플. 한겨레 자료사진
악플. 한겨레 자료사진

‘엔(N)잡러’라는 이름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붙이고 일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덕분에 내 이야기를 좀 더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강연이나 인터뷰 기회가 종종 생겼다. 한 인터뷰에서 ‘워크라이프 밸런스보다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고, 이것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으로 쓰였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혼수 밸런스나 맞추라”는 댓글이 달렸다. 인터뷰 어디에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자라서 책임감 없이 일해도 되니까 일 실험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인터뷰 기사가 나갈 때마다 달렸다. 재미있는 것은, 일 실험을 끝내고 창업을 하고 나서도 똑같은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는 것이다. 책임감 없이 창업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는 남성 창업자들의 책임감과 성실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기사와 댓글 사이의 개연성이 없어 웃어넘기다가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정말 책임감이 없어 보이나?

이런 나의 경험이 개인적인 차원의 것만은 아닌지, 관련된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호주국립대 아마라세카라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여성 과학 강사들이 남성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활동하게 된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과학 강사들의 과학 강좌 370개에 달린 2만3005개의 댓글을 분석한 결과, 여성 강사에게 달린 비판적인 댓글이 남성의 두배 이상이었다. 특히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남성의 세배를 넘었고, 성적인 내용을 담은 댓글은 열두배의 차이가 났다. 2014년 ‘테드토크’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강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의 댓글이 여성의 경우 15.28%, 남성은 9.84%를 차지했다.

여성에게 쏟아지는 개연성 없는 악성 댓글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삶을 영위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칼럼이나 인터뷰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날은 댓글을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가슴 한쪽이 묵직하다. 반복되는 경험이 있었고, 그것이 이번에도 예외일 리 없다는 예측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행동이나 선택을 위축시키고 염려하거나 스스로 검열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식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문제는 비단 인터넷 댓글창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만난 여성 창업가는 창업 초기에 ‘시집 잘 가려고 창업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남성 대표가 있어야 투자를 해주겠다는 말을 들은 여성 대표들의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이들이 받는 질문과 조언은 이들이 가진 능력과 어떤 개연성을 가지는지 의문이다. 여성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콘텐츠와 상관없는 평가를 받고, 자기 검열을 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악성 댓글은 단순히 익명성이 만들어내는 인터넷의 폐해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익명성 뒤에 숨어 평가하고 공격하는 것이 특정 성별, 특정 집단일 때 이것은 그들을 향한 차별의 일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여성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기사에 의견을 보태고 싶은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여성들의 외모나 능력을 평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평가가 진짜 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라. 당신의 그 평가가 어쩌면 그냥 에너지를 낭비하게 할 뿐인 ‘개연성 없는 댓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진아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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