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은 북유럽 3개국 순방 중 핀란드를 방문했다. 핀란드 대통령과 경제 협력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냉전 시기 핀란드는 서유럽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쳐 미국의 정책을 더 많이 따르자고 주장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비판을 받아 ‘핀란드화’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핀란드화’라는 말에는 소련의 위협에 굴복했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김수권 전 주핀란드 대사는 최근 쓴 <핀란드 역사>에서 다르게 평가한다. 핀란드의 중립외교는 강대국인 소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소련에 굴복하는 것 같은 현실주의 정책을 펴면서도 법치와 의회민주주의 틀 내에서 핀란드의 국가정책을 결정해 나간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핀란드의 역사를 돌이켜 보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일단락되더라도 미-중 간 경쟁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한국의 처지도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어느 편인지 선택을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법치와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지켜나가면서 관련 국가의 이익을 배려하는 현실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선택의 어려움은 2016년 사드 배치 때도 있었다. 어려운 선택이었고 결과도 엄중했다. 아쉬운 점은 사드 배치의 필요성이나 문제점에 대해 국회에서 동의를 얻거나 적어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배치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회의 절차를 충분히 거침으로써 국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드러나도록 해야 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존중하는 국가 의사결정으로 국민을 단합시켜야 했다. 이 과정에서 비현실적 명분만을 앞세우는 주장은 걸러질 것이었다. 외국에도 대한민국이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이를 통해 외국에 과도한 압박은 한국 시민의 반발을 불러와 자신들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 그러나 절차에 필요한 시간을 강대국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 내부에서도 ‘생존이 우선이지 국회의 절차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단기간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러나 우리의 법치와 의회민주주의를 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과의 관계에서 국내의 법치와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존중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관된 자세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시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 제60조 제1항에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체결·비준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외국과의 상호안전보장에 관한 군사협정을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 국익을 위해 비밀리에 체결하였다고 당당히 주장하는 전 장관이 있었다. 이렇게 헌법을 무시하고 외교안보정책을 수행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어떤 나라가 우리의 법치와 의회민주주의 절차를 존중할 수 있을 것인지 통탄스럽다. 법치의 기본인 사법부 독립의 원칙을 침해하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식의 언행을 일삼는 모습은 어떤가. 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법치를 옹호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지 못한 결과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인용한 대법원의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반문명적 논리를 일본이 주장할 빌미를 제공했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는 원칙에서 징용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외교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는 외교는 필요하지 않다.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선거 장충단 유세에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게 되면 국제사회와 미국이 우리를 존경하게 되어 안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다. 우리의 운명에 대한 결정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의회민주주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굳건히 지켜 우리의 법치와 의회민주주의에 대해 외국이 존중하고 기다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치열해지는 국제 정세에서 우리가 가다듬어야 할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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