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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고급 말싸움법 / 김진해

등록 2019-07-14 17:52수정 2019-07-14 19:40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매사를 힘의 세기로 결판내는 약육강식의 습관은 말싸움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반드시 ‘이겨먹어야’ 한다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독선이 깔려 있다. 상대방은 뭔가 꿍꿍이가 있고 이기적이다. 내가 이겨야 정의의 승리다.

이런 전투 상황을 벗어날 비법이 있다. 말싸움 중간중간에 ‘물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말싸움은 자기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게 목적인데, 이를 더욱 확실하게 성취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반론에 대한 고려’이다. 내 주장에도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상대방의 주장에도 쓸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인정해주는 단계. 이 ‘반론에 대한 고려’는 ‘물론’이란 말로 구현된다. 자기 말만 하다가도 ‘물론’이 떠오르면 브레이크가 걸리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총을 내려놓고 싸움 없는 중립지대로 모이자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적진에 뛰어들어 보라는 말이다. 상대방의 안마당을 거닐면서 그에게도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덕을 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배려심인데,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성찰과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남는 문제는 누가 먼저 ‘물론’을 떠올리느냐이다. 아무 논리 없이 위계와 완력으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무도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만 손해 보라고? 그런 사람 앞에서조차 ‘물론’이란 말을 ‘기어코’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든 인간에겐 존재의 이유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차분해지고 깊어질 거다. 물론 그걸 이용해먹는 자들이 득실거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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