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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돼지의 울음소리 / 김진해

등록 2019-07-21 17:27수정 2019-07-22 13:14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아빠도 돼지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야 했어!”

스무살 딸은 갑자기 펑펑 울었다. 새벽, 어느 도시에 있는 소와 돼지 도살장을 다녀온 날 밤이었다. 종일 트럭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돼지들에게 마실 물을 준 게 다였단다. 진실을 보았고, 그는 울었다.

늘 그렇지만, 육식과 관련해서도 언어는 진실을 가리는 가면이었다. 도시인은 ‘먹을 때’에만 동물과 접촉한다. 다만 ‘살아 있던 동물을 죽이고 절단하여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는 진실은 지우고 ‘고기’라는 경쾌한 이름의 음식을 먹을 뿐이다. 언어만 바꾸면 ‘살아 있던 동물’은 사라진다. ‘등심’이나 ‘육회’란 말만으로도 살아 있던 소는 사라진다.

하지만 인간은 ‘숨통을 끊는 타격, 20초 안에 피를 다 빼내야 하는 방혈, 머리와 다리를 자르는 두족절단, 가죽을 벗기는 박피, 내장 적출, 몸통을 두 조각 내는 이분도축, 소독·세척’이라는 일곱 단계를 거쳐 소를 살해한다. 별도의 가공작업을 거쳐 ‘등심, 안심, 채끝, 제비추리, 양지, 사태, 안창살, 갈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죽음을 분리·포장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이런 육식문화가 인간끼리 벌이는 착취의 역사와 닮았다고 본다. 인간은 살아 있던 동물에 대한 살해와 절단 과정을 ‘고기’라는 이름으로 은폐해왔다.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강제로 징집하여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수탈 행위의 도구로 전락시킨 과정을 ‘강제징용’이라고 부르지 않고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의 문제’라는 이름으로 은폐해왔다. 아베도 강제징용 피해자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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