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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말 같지 않은 소리 / 김진해

등록 2019-07-28 18:12수정 2019-07-28 19:49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운명적 나이인 열다섯 살 아들은 랩에 몰두해 있다. 본인 인생과 음악의 궁합을 맞췄는지 세상, 특히 부모에 대한 저항정신이 항일투쟁만큼 매섭다. 그런데 그가 하는 랩을 흉내라도 내볼라치면 이내 좌절한다. 그의 혀는 현란하고 민첩한데, 내 혀는 느리기만 하다. 다연발 속사포로 1초에 열두 음절을 쏴대는데, 나는 왜 세 음절 내기도 벅차냔 말이다.

어른은 아이의 퇴화이다. 말소리만 봐도 그렇다. 세상 말소리는 1500개가 넘는다. 아이는 이 소리를 모두 낼 수 있다. 그러다 모어를 익힐 즈음엔 이 중에 10%도 안 남는다. 모어를 배운다는 건 90%의 소리를 내다 버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끔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본다. 아이 때 놀면서 냈던 ‘두구두구’ 헬리콥터 소리며, ‘부웅, 끼익’ 자동차 소리. 섬세하고 실감났다. 로켓은 ‘슈웅’ 지구 궤도를 지나 목성에 착륙했다. ‘야옹야옹’을 철자대로 발음한다면 반려묘 가족 자격 미달이다. 몸살에 시달릴 때 냈던 신음소리를 떠올려 보라. 글로는 ‘아아아’나 ‘으으음’ 정도일 텐데, 아픈 사람의 신음소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깊은 한숨을 쉬어보라. ‘후’나 ‘후유’로 온전히 담지 못한다. 더 놀라운 건 ‘스읍’이다. 보통 날숨으로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는 들숨으로 낸다. 상대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멋쩍은 상황에서 내는 소리이다. 사전에도 없다.

낼 수 없을 것 같은 소리를 내는 순간, 그래서 언어 체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바로 그 순간 말이 말다워지는 순간이다. 체계에서 배제된 요소가 실은 구겨진 채로 체계 안에 숨어 있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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