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문자와 일본정신 / 김진해

등록 2019-08-11 18:02수정 2019-08-12 14:38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구두 신을 때와 슬리퍼 신을 때 걸음걸이가 다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고 습관이 인품을 결정한다. 말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문자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어떤 마음의 습관을 갖는지 달라진다.

일본의 문자체계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한자’와 함께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쓴다. 히라가나는 한자가 아닌 고유어를 표시하는 데 쓴다. 가타카나는 외래어나 의성어·의태어에 쓴다. 세 가지 문자로 말의 출처를 구별하는 사회는 일본밖에 없다.

게다가 한자어를 읽는 방식이 참 고약하다. 한국어에서 ‘石’은 항상 ‘석’이지만, 일본어에서는 때에 따라 ‘세키’로도 읽고(음독), ‘이시’로도 읽는다(훈독). 음과 뜻으로 왔다갔다 하며 읽는 방식은 일본인들에게 일본 고유어를 그저 한자로 표시할 뿐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여하튼 일본어에 들어 있는 외래 요소는 한자와 가타카나로 ‘반드시’ 표시된다. ‘더우니 丈母님이랑 氷水 먹으러 cafe 가자!’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일본은 이런 식으로 천년을 써왔다. 끊임없이 외부를 확인하고 표시했다. 그만큼 외부와 다른 자신이 고유하게 있고, 자신들에게 외부의 영향에도 굳건히 지켜온 순수 상태가 있다고 확신한다.

근본을 따지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다. 근본을 뒤쫓는 태도는 신화적 존재를 만들어 자신들 모두 그곳에서 ‘출발’했고, 그곳이 가장 순수한 상태이자, 궁극적으로 ‘회귀’해야 할 곳이라고 상상하게 만든다. 천황이 그렇고 대화혼(大和魂)이 그렇고 가미카제(神風)가 그렇다. 문자가 일본정신을 만들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김 여사 공천개입,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9월20일 뉴스뷰리핑] 1.

김 여사 공천개입,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9월20일 뉴스뷰리핑]

‘베이징 비키니’와 3단 폴더블폰 [특파원 칼럼] 2.

‘베이징 비키니’와 3단 폴더블폰 [특파원 칼럼]

[사설] 계속되는 김 여사 공천 개입설, 사실관계 분명히 밝혀야 3.

[사설] 계속되는 김 여사 공천 개입설, 사실관계 분명히 밝혀야

우리 엄마가 ‘백종원’으로 변했어요~ 4.

우리 엄마가 ‘백종원’으로 변했어요~

역지사지 실험, ‘김건희’ 대신 ‘김정숙’ 넣기 [아침햇발] 5.

역지사지 실험, ‘김건희’ 대신 ‘김정숙’ 넣기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