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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타인을 중심에 / 김진해

등록 2019-08-25 17:59수정 2019-08-26 13:52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나는 야구에서 좌익수가 누군지 헷갈린다. 관중석 기준으로 왼쪽인지 포수 기준으로 왼쪽인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 지금, 나중’처럼 장소나 시간 표현은 말하는 이 중심으로 정해진다. 포수 쪽에서 외야를 보며 중계를 하니 포수 기준으로 왼쪽이 좌익수인 게 맞나 보다.

그런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중심에 놓는 경우가 있다. 병사와 마주 선 장교는 병사들을 자신의 왼쪽 방향으로 가게 하려면 ‘우향우’라고 해야 한다. 내 기준대로 ‘좌향좌’라고 하면 병사들은 오른쪽으로 가게 된다.

어느 정도 규칙으로 굳은 경우도 있다. 손윗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 어떻게 하는지 떠올려보라. 아빠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라면을 먹을 테니, 너는 참아라.”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할아버지 어깨 좀 주물러 주렴.” 아줌마가 길 잃은 꼬마에게 “아줌마가 집에 데려다줄게.” 뭐가 이상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영어로는 모두 1인칭 대명사 ‘나’(I)를 쓴다. 상대와 어떤 관계인지 상관없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라는 건조하고 추상적인 역할만 표시한다. 반면, 한국어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확인하되, 타인을 중심으로 자신을 호명한다.

어린 사람도 상대방을 ‘너/당신’(you)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춘기더라도 아빠한테 “당신만 먹고 나는 먹지 말라고?”라고 한다면, 그날은 좀 늦게 자게 될 것이다(“아빠만 먹고 나는 먹지 말라고?”라고 하면 반 그릇을 덜어줄 수밖에).

이 독특한 언어습관은 이웃 일본말에도 똑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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