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책상이란 뭔가?’라 물으니 ‘책상이 책상이죠!’라 답한다. 선생은 실망한다. 어떤 말이 항상 참일 때 이를 항진명제라고 한다. ‘오늘 비가 오거나 오지 않았다’고 하면 항상 참이다. 참이 아닐 수 없어 허무하다. ‘책상이 책상이죠’라는 말도 ‘3 = 3’이라는 말처럼 늘 참이다. 거짓일 가능성도 없고 새로운 정보를 보태지도 못하는 항진명제는 본질적으로 공허하고 하나 마나 한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곧잘 쓴다. 미끈하고 냉정한 논리와 달리 말에는 다양한 때가 묻어 있고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여자는 여자다’와 ‘남자는 남자다’만 봐도 사회적 통념의 때가 말에 짙게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君君臣臣 父父子子)이라는 말도 하나 마나 한 얘기다. 그럼에도 신분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반동의 언어로도 혁명의 언어로도 읽을 여지가 생긴다. 늙은 선승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는다. ‘너는 너야’라는 말에 위로와 자신감을 얻고, 떼를 쓰는 아이를 보며 ‘애는 애다’라 하면서 화를 삭인다. 하느님도 자신을 처음 소개하면서 “나는 나다”라고 했으니, 하나 마나 한 이런 말들이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하나 보다. 거론되는 대상의 고유성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깨닫거나, 대상에 대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하는 여러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말은 논리가 아니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들)의 심장과 시간이 박혀 있다. 그나저나 가을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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