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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날아다니는 돼지 / 김진해

등록 2019-09-29 18:11수정 2019-09-29 19:54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잠시 눈을 감고 ‘날아다니는 돼지’를 떠올려보라. 뭐가 떠오르는가? 영화 <붉은 돼지>의 광팬이 아니라면 비행기를 조종하는 돼지가 떠오르지는 않을 거다. 날개가 달려 있던가? 어디에 달려 있던가? 배 밑인가 등 뒤인가? 몇 쌍이던가? 육중한 몸으로 날려면 힘이 꽤 들 텐데도 두 쌍이 아니고 왜 한 쌍만 달려 있을까? 입은 어떻게 생겼던가? 나와 비슷하다면 당신은 새 부리가 아니고 돼지 주둥이를 떠올렸을 것이다. 발도 새 발이 아니라 돼지 발일 테고. 깃털이 있으면 좋으련만, 피부는 어찌나 매끈한지.

세상 어디에도 ‘날아다니는 돼지’는 없다. 그게 중요하다. 없는데도 의미를 아니까 신통한 일이다. 흔히 말의 의미를 사물과 연결시킨다. ‘손톱’이 뭐냐고 물으면 ‘이거’ 하면서 손톱을 가리킨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돼지’에서 보듯이, 말의 의미는 사물로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결합한다. 돼지의 생김새와 새의 날갯짓을 합해 새로운 조합을 만든다.

그런데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에 떠올리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침 밥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뜨끈한 국에 밥일 수도 있고, 식빵에 딸기잼일 수도 있고, 우유에 시리얼일 수도 있다. 말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은 사람마다 의미를 다르게 구성한다는 뜻이다. 경험의 차이가 의미의 차이를 만든다. 같은 말을 써도 다른 의미를 떠올린다. 우리는 다 다르다. 그러니 내 말뜻을 못 알아듣는 상대를 너무 윽박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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