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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애정하다 / 김진해

등록 2019-10-27 17:12수정 2019-10-28 02:35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은 늘 변한다. 흥미롭게도 변화의 동력은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다. 내용에 있지 않고 형식에 있다. 형식이 마련돼야 내용이 꿈틀거린다. 말도 그 자체로 변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놓일 때 변한다. 이 새로운 환경이 말의 의미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

동작이나 상태의 뜻이 있는 명사에 ‘하다’를 붙여 동사를 만든다. ‘공부하다’ ‘걱정하다’ ‘하품하다’에 붙은 ‘공부, 걱정, 하품’을 보면 말 속에 움직임이나 상태의 의미가 느껴진다. 이럴 경우 ‘하다’는 명사의 동작이나 상태를 곁에서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나무’라는 말에서 어떤 동작이나 상태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그저 사물을 뜻한다. 그런데 ‘하다’가 붙자마자 나무를 ‘베거나 주워 모으는 행동’의 뜻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명사’가 ‘하다’와 함께 쓰인다는 환경 자체가 원래 없던 동작과 상태의 뜻을 갖게 하는 조건이 된다.

‘애정하다’가 낯설다. 비슷한 뜻의 ‘사랑하다’ ‘좋아하다’가 있는데도 새로 자주 쓰인다. ‘애정’에는 동작의 뜻이 없었다. ‘하다’와 붙여 쓰다 보니 없던 동작성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몇 해 전에 공격한다는 뜻으로 유행했던 ‘방법하다’도 비슷하다. 반복적으로 많이 쓰이면 시민권을 얻는다. 어제는 틀린 말이 오늘은 맞는 말이 된다. ‘축구하다, 야구하다, 수영하다’는 자연스러운데 ‘탁구하다, 골프하다’는 살짝 어색하다.

어쩌면 낯익음과 낯섦의 간극은 어떤 인과의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얼마나 자주 만나고 보고 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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