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ㅣ 정치팀 선임기자
정치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조직화해서 결론을 내리고 해소하는 일이다.
정당은 선거에서 제각각 다른 노선과 정책을 내놓고 경쟁한다. 선거가 끝나면 노선과 정책을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하고 절충해서 집행해야 한다.
적어도 다음 선거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돌아간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갈등이 첨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선거가 끝났으면 갈등이 당연히 누그러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야당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무력화해 몰아낼 궁리만 한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그러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을 “총체적 폐정의 2년6개월”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의 시간은 국정의 전 분야에서 대한민국 기적의 70년을 허무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안보 파탄, 도덕 파탄의 2년 반이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직 내놓고 물러가라는 얘기다. 대통령 몰아내기에 일부 종교단체와 언론도 가세했다.
“국민혁명으로 문재인 끝장내자.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
종교단체의 광화문 집회 광고 제목이다. 주말마다 “문재인 하야”를 외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줄까?
언론의 임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증오를 부추기고 저주와 조롱을 퍼붓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회주의와 전체주의 나라로 가고 있나’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인 권력자들’
‘국민 호구(虎口) 시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이른바 보수 신문의 칼럼 제목이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태극기 부대만 독자로 확보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일까?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혹시 내가 저런 칼럼을 쓰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정치와 종교와 언론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제도 탓이 가장 크다.
승자독식 대통령제 때문이다. 대통령은 한 사람이다. 권력 나누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권력을 빼앗고 지키기 위한 극한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곧 다가온다.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기면 문재인 정부 마음대로 입법할 수 있을까? 없다. 국회법을 개정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머지않아 임기 말이다.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이기면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 불일치로 대혼란이 시작된다. 혼란은 2022년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2022년 대통령선거로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될까? 어림없다. 누가 당선되든 문재인 대통령처럼 고생길에 접어든다.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야당 때문이다. 끝없는 악순환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권력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으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건 정파 간 이해득실의 문제가 아니다.
가능할까? 가능하다. 내각제는 국민이 싫어한다. 국회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다. 대안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다. 국회 추천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력을 나누어 행사한다. 대통령과 국회가 국정을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다.
생짜배기 실험이 아니다. 우리는 연립정부를 경험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종필·박태준·이한동 국무총리는 권력 지분을 가진 실세 총리였다.
개헌을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20대 국회에서는 어렵다. 내년 총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 전까지가 ‘골든타임’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총선 이후 개헌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21대 국회는 곧바로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등 몇 단체가 19일 국회에서 ‘국민개헌발의권 쟁취를 위한 대토론회’를 연다.
국민 발의가 가능하도록 ‘원 포인트’ 개헌안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서 통과시킨 뒤 총선 이후 국민 발의로 개헌안을 제출하겠다는 단계적 접근안이다. 정계, 학계, 언론계에서 15명이 토론자로 나선다. 성과를 기대한다. 어떻게든 분권형 개헌의 불씨를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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