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은 몸의 길이가 2~4㎜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것을 비유하는 속담에 벼룩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는 매우 뻔뻔한 사람을 두고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꾸짖는다. 아주 작은 벼룩조차 낯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체면과 염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벼룩의 뜸자리만도 못하다’는 속담은 벼룩의 몸에 난 뜸자리(뜸을 떠서 생긴 흉터)보다도 작다는 뜻이다. ‘벼룩 꿇어앉을 땅도 없다’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고, ‘벼룩 등에 육간대청을 짓겠다’는 속담은 벼룩의 등에 여섯 칸이나 되는 넓은 마루를 짓겠다는 것으로 하는 일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을 때 사용한다.
‘뛰어봤자 벼룩’은 도망을 쳐봐야 별로 멀리 못 간다는 뜻으로 도망친 사람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이 속담엔 반론이 나온다. 벼룩이 한번 뛰어오르면 최대 높이 20㎝, 거리 35㎝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몸길이의 100배가 넘는다. 과학자들은 벼룩의 놀라운 점프력의 비결을 뒷다리 외골격에 들어 있는 ‘레실린’이라는 단백질에서 찾아냈다. 레실린은 탄력이 고무의 3~4배에 이르는 탄성물질이다.
벼룩과 관련된 속담 가운데 백미는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가 아닌가 싶다. 그 작은 벼룩의 간마저 빼내어 먹으려는 끝없는 욕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99개 가진 사람이 100개를 채우려고 1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니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벼룩은 간이 없다. 소화기관 등이 간의 기능을 대신한다.
조현범(47)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대표이사 사장이 21일 배임수재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조 대표는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의 차남이다. 재벌 3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사위이기도 하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2019년 기준 자산 규모가 9조5천억원으로 재계 순위 38위 대기업집단(재벌)이다.
조 사장의 혐의 중 배임수재는 하청업체로부터 납품 등의 대가로 매달 수백만원씩 10년 동안 약 5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갑을관계를 무기로 뒷돈을 챙긴 셈이다. 그는 이 돈을 차명계좌로 받아 대부분 유흥비로 썼다고 한다. 말 그대로 벼룩의 간을 내먹은 것이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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