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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대통령이 절대군주인가 / 이완

등록 2019-11-24 18:02수정 2019-11-25 09:16

이완 ㅣ 정치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에 한 ‘국민과의 대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국민 패널 300명 가운데 한명으로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했던 ㄱ씨에게 물었다. 그는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이 지목되길 기다리며 120분 내내 손을 들었던 한 남성이 생각난다고 했다. 방송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지만 몸이 불편한 그 남성은 동행자의 손을 맞잡고 계속 손을 들었다. 하지만 끝내 질문 기회는 그에게까지 오지 않았다. ㄱ씨는 “진행자들이 다양한 이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덩치가 크고 소리를 크게 지르는 남자들이 주목을 더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옆에서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보조진행자 허일후 <문화방송> 아나운서가 공식 행사가 끝난 뒤 ㄴ씨가 가져온 초록색 쪽지를 받아, 나중에 대통령에게 전달할 국민 질문지 맨 위에 올려놓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대통령에게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서 시민 300명은 다른 사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었다. 질문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그만하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ㄱ씨는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이를 경청하기보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할까 조바심을 내는 마음들이 많이 느껴졌다”고 했다.

방송을 지켜본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평했다. “한국 사회가 수평적 조정 능력은 부재하고, 수직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위계적 사고가 강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검찰개혁이나 남북관계 등에 대해 대통령에게 따져 묻는 질문도 있었지만, 각자 해결 못 한 민원들을 하소연한 경우가 꽤 보였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 자리까지 왔겠냐마는, 저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지역사회나 그 문제를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할 곳에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왔다는 얘기였다. 이 점은 광화문에서 집회하고 청와대까지 행진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인기 상품인 청와대 국민청원의 구조도 비슷하다.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해결하거나,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다려야 할 사안들이 국민청원으로 올라온다. 때때로 행정부 권한을 넘어서는 청원에 청와대가 답하기도 한다. 대통령을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왕조시대 군주처럼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는 21세기 산업선진국에서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일가? 한 미디어 전문가는 “국민과의 대화가 팬클럽 행사처럼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신청을 받아 참석자를 정하면서부터 예고된 일이다. 뭔가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신청할 수밖에 없고 이들의 절박함이 전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정치 부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가 아니면 내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줄 국회의원, 지방의원을 찾기도 쉽지 않다. 민원을 넣고 지난한 조정과 협상 과정을 지켜보는 것보다, 힘센 권력에 줄을 대는 게 더 쉬운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국민과의 대화가 있기 하루 전날,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 기자를 꼭 만나야겠다고 했다. 춘추관 앞 카페에서 만난 할머니는 자신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엄지손가락이 누구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이름을 말하는 대신 자신의 손바닥에 ‘문재인’이라고 썼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대통령을 만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 온 이들을 보고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진짜 작은 대한민국을 보았다면, 사연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고, 상처받은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풀뿌리 정치, 건강한 정치를 뿌리내리게 하는 노력이다. 이제 2년 반도 남지 않았다.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다.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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