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국어는 최고로 배우기 어려운 말이다. 동사에 ‘반드시’ 어미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기본형에 과거형, 과거분사형, 진행형만 알면 된다. ‘play, plays, played, playing’ 말고 다른 형태가 없다. 그러니 앉은자리에서 ‘I play a game.’이라고 한마디 할 수 있다. 한국어는 동사에 붙는 꼬리가 무시무시하게 많다. 어미 천국이자 어미계 사회(!)라 어미 없이는 말을 끝맺을 수 없다. ‘하다’라는 동사를 제대로 쓰려면 ‘한다, 해(요), 합니다, 했다, 했어(요), 했습니다, 하겠다, 하겠어(요), 하겠습니다’처럼 시제와 상대 높임 여부를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여기에 의문, 명령, 감탄, 청유형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형태가 늘어난다.
문장을 연결하는 어미도 많다. ‘하고, 하며, 하면, 해서, 하니까, 하는데, 해도, 하자마자, 하지만, 하나, 하더라도, 할지언정, 할지라도, 할까, 하느라, 할뿐더러, 하러, 하려고, 하게….’ 예만으로도 이 지면이 모자란다.
앞뒤 말을 이어 붙이는 접착제가 이리 많은데도 성에 안 찼는지 명사를 끌어들인다. 예컨대, 이유를 말하는 데 ‘하느라, 해서, 하니까’ 정도의 어미면 충분한데, 굳이 ‘했기 때문에’ ‘하는 바람에’ ‘한 덕분에’ ‘한 탓에’ ‘하는 통에’ 따위를 만들어 쓴다. 동사 하나를 배우고 이를 활용하여 말 한마디 하려면 이렇게 많은 어미 중에 하나를 골라 조합해야 한다. 이를 익히는 일은 현기증에 구토를 수반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한국어 학습자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