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아침 일찍 빈병을 챙겨 슈퍼에 갖다 팔려고 나서는데, 아내는 오후에 가라고 말린다. 아침부터 빈병을 갖고 가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하루 매상이 마수걸이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이 무심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습관은 잘 안 바뀐다. 말에 대한 잔소리꾼들은 말소리의 변화를 ‘말세적 징후’로 보는 습관이 있다. 말은 타락을 반영하기도 하고 부추기기도 한단다. 그야말로 슈퍼맨이다. 그들이 거론하는 징후 중 하나는 사람들 말이 점점 ‘쎄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범은 된소리다. ‘잘렸어’ ‘세게’ ‘소주’라 해야 하는데 ‘짤렸어, 쎄게, 쏘주’라고 하니 사회는 더 거칠고 강퍅해진다는 거다.
된소리를 경멸하는 태도는 외래어 표기법에도 녹아 있다. 베트남어 등 몇몇 언어를 빼면 원칙적으로 외래어 파열음(k, t, p)은 ‘ㅋ, ㅌ, ㅍ’으로 쓰지 ‘ㄲ, ㄸ, ㅃ’으로 쓰면 안 된다. ‘마오쩌둥’처럼 ‘ㅆ, ㅉ’이 허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꼬냑, 싸이코, 모짜르트’가 아닌 ‘코냑, 사이코, 모차르트’처럼 써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중국음식 하나가 흥미롭다. ‘꿔바로우[鍋包肉]’.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으로 중국어를 표기할 때 ‘ㄲ’은 절대로 쓸 수 없다. 원칙을 따르자면 이 음식은 ‘궈바러우’ 정도로 써야 할 텐데 이를 얼마나 따를까. 그렇다고 ‘탕수육’처럼 우리 한자음에 따라 ‘과포육’이라 하면 장사를 포기하는 일일 테고. 기자들이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말의 미래를 ‘좀 더 지켜봐야겠다.’ 된소리의 반격이 이미 시작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