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 ㅣ 부동산학박사, 건국대 겸임교수
“(집값이) 원상회복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집값 급등의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집값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초저금리 기조와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 정책을 10년 이상 지속한 데에 있다. 이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실시하자 유럽, 한국 등 대다수의 나라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10년 이상 지속된 양적완화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월가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양적완화는 기업과 산업 구조 개혁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연시킨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례로 일본을 지목했다. 양적완화는 ‘좀비기업’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자산 가격의 급등을 일으킨다는 분석이다. 급등한 자산에 주택도 포함된다.
양적완화의 부작용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미국의 사례를 보면, 2009~2018년 미국 20개 대도시의 주택가격은 50% 상승했고 다우존스지수는 108% 올랐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15%보다 집값은 3배, 주가는 7배 넘게 오른 것이다. 유럽 또한 양적완화의 폐해를 피하지는 못했다. 각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돌파하려고 정공법인 기업, 산업 구조조정을 외면한 채, 한번 손대면 절대 끊을 수 없어 ‘마약’으로 비유되는 ‘화폐 살포’ 정책을 고수한 결과다.
양적완화의 폐단은 자산가격의 ‘뻥튀기’에 그치지 않았다. 집값 급등은 모든 나라에서 계층 간,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을 일으켰다. 이런 총체적인 갈등의 결과물이 트럼프의 집권이고 영국의 ‘브렉시트’ 지지다.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했던 스웨덴은 지난달 도입 5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포기 선언을 했다. 시중자금이 매년 10% 이상 집값을 올려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기진작 명분의 양적완화는 실제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까?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민간투자는 늘어나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업들이 내부 유보자금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의 내부 유보자금 투자 비중은 양적완화 시작 직후인 2011년 60%에서 2019년 77%까지 치솟았다. 올해 정부는 지난해보다 28%(28조5천억원) 증액한 130조2천억원어치의 국채를 발행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목적으로 2009년 63% 증액 발행한 이래 최고의 증가율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부와 통화당국이 물가상승과 싸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여전히 양적완화를 고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양적완화는 물가상승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그 피해는 오롯이 집값 거품 등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언급한 집값의 원상회복은 실현 가능한가? 주52시간 근무와 최저임금제 실시로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 원상회복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래도 정말 원상회복을 하고 싶다면, 미국이 1970년대와 2000년대 초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렸듯이 정부가 대응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급격한 금리 인상은 2008년 금융위기가 그랬듯이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시장 가격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자원 부족의 정도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말했다. 최근 30대가 아파트 청약을 포기하고 너도나도 집을 산 이유는 수요 대비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집값 상승에 베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값을 원상복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충분한 주택 공급이다. 수요 억제가 아니다. 물론 정부는 공급 대책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달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받은 해당 사업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건축심의 완료’나 ‘철거신고’ 단계에 진입해 있어서 2년 이내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은 1천가구도 되지 않았다. 서울의 연간 멸실주택이 4만가구를 초과하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의 공급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직장인의 51%는 거주 구에 있는 직장에 다니며, 이들의 출근 시간은 21분, 도보를 이용한 통근도 이들 중 3분의 1인 것으로 조사됐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2030세대가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움)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직주근접은 당연히 주거비를 끌어올리는데 이 추세는 현재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추세로 향후 도심 집값은 더 상승한다는 것이다.
1월16일치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주거비는 1970년대 국내총생산(GDP)의 8%에서 최근 지디피의 11%를 차지할 정도로 치솟았다”며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 집값이 급등하는 원인은 까다로운 도시계획 규제에 있다”고 보도했다. 주택 소유자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밀도 개발을 규제하고 공급을 방해하여 주거비 급등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즉 도시계획 규제와 집주인들의 님비 현상이 집값 폭등의 원흉인 셈이다.
잡히지 않는 집값을 때려잡으려고 노심초사하다 보니 청와대 한 인사는 ‘주택 매매허가제’를 시행하자는 엉뚱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시행했던 제도를 도입하자는 망언을 듣고 있자니 과연 대한민국이 시장경제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제라도 정부는 수요가 많은 도심에 주택을 충분하게 공급하는 정책을 시행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시계획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우리는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인 세상에 살고 있다.
[‘집값 원상회복’ 왜, 과연, 어떻게?]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집값 안정을 위한 끊임없는 대책’을 전제로 “(부동산값이 급상승한) 지역들은 가격이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밝혔다. (속내는 아닐지언정) 누구도, 3년 새 7억원이 오르고 25평에 10억이 넘는 집값을 정상이라 하진 않는다. (속내는 아닐지언정) 따라서 그 집값의 거품이 거둬져야 한다는 데도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집값 원상회복’이란 구호가 하나의 여론으로 수렴되진 않는다. 오른 집값과 오르지 못한 집값 사이에서, 20·30세대는 생애 극복 못할 자본 격차가 발생했다고, 40·50세대는 자식들도 극복 못할 자본 격차가 발생했다고 할 법하다. 이것이야말로 정상사회라 할 수 없다. ‘집값 원상회복’을 ‘해석’부터 하여, 진영 간 상이한 해법까지 모색해본 이유다. 김원중 건국대 겸임교수와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글을 나란히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