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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두 교황,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 조일준

등록 2020-01-27 20:10수정 2020-01-28 11:27

2013년 2월 11일 이른 아침, 바티칸. 교황 베네딕토 16세(당시 85세)가 추기경 회의에서 짤막한 라틴어 발표문을 낭독하자 장내가 술렁였다. 재위 8년 만의 전격적인 사임 발표에 세상이 깜짝 놀랐다. ‘종신직’이 전통적 관례였던 가톨릭 교회에서 현직 교황이 “온전한 자유의지”로 물러난 것은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이래 719년 만이었다.

이틀 뒤, 콘클라베(전 세계 추기경들의 교황 선출 밀실회의)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성베드로 성당 2층 발코니에서 소탈하고 푸근한 인상의 새 교황이 모습을 나타냈다. 조금 전까지도 아르헨티나 예수회 소속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었던 인물.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첫 남미 출신이자, ‘빈자의 성인(프란치스코)’을 교황명으로 선택한 첫 교황이다.

두 교황은 여러 면에서 대조됐다. 베네딕토 교황은 독일 출신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회윤리를 강조한 신학자다. 어려서부터 사제의 소명이 분명했고, 유겐트(나치 소년단) 전력으로 비판받았다. 바티칸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냈으며,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 ‘가톨릭 정통신앙의 파수꾼’으로 불렸다. 혼자 식사하는 때가 많았고 피아노 연주로 고독한 자리를 달랬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학을 공부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해방신학자다. 연인에게 청혼하러 가던 길에 ‘부름’을 받았다. 군사독재 정권의 ‘더러운 전쟁’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려다 오해를 받았으며, 빈민 사목을 하며 낮은 자리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축구를 즐겼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위키미디어 코먼스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위키미디어 코먼스
요즘 <두 교황>(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란 영화가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출신과 경험, 성품과 취미, 신앙관과 세계관이 다른 두 교황의 교체 과정을 사실에 상상력을 보태 빚어냈다. 앤서니 홉킨스(베네딕토 역)와 조너선 프라이스(프란치스코 역)가 열연했다. 영화는 베네딕토 교황 사임 한해 전인 2012년,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은퇴 허락을 받으려고 바티칸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이는 영화적 상상력의 설정으로, 사실과는 다르다). 마침 교황도 전혀 다른 속내로 추기경을 바티칸으로 부른다. 사임을 결심한 교황과 막중한 책임을 권유받고 손사래를 치는 추기경이 나누는 내밀한 대화가 영화의 큰 줄기다. 서로 생각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깊은 신뢰와 존중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대화는 특정 종교를 넘어 ‘보편적’(가톨릭) 울림과 생각거리를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행보는 반세기 전 교황 요한 23세를 연상케도 한다. 1958년 즉위한 요한 23세는 선출 당시만 해도 세력다툼이 팽배했던 바티칸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채 ‘과도기 교황’ 정도로 선택된 77세 고령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의 그가 불과 5년의 재위 기간에 이룬 일은 혁명적이었다. 선종하기 한해 전인 1962년에 소집해 가톨릭 교회 개혁의 정초를 놓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절정이다. 그는 교회 안팎에서 분출하는 변화와 개혁 요구를 적극 수용했을 뿐 아니라, 동방교회와 개신교를 품어 안으며 교회일치운동을 주도했다. 미-소 양대 진영의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핵전쟁의 기운을 차단하고 세계평화에 힘썼으며, 빈부 격차와 생명윤리 등 인류 공동의 현안에도 적극적인 나침반 구실을 했다. 1963년 교황으로는 최초로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에서 열린 가톨릭 청년 축제인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가슴에 세월호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에서 열린 가톨릭 청년 축제인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가슴에 세월호 추모를 뜻하는 노란색 리본 배지가 눈에 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에서 열린 가톨릭 청년 축제인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가슴에 세월호 2014년 7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충남 서산에서 열린 가톨릭 청년 축제인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가슴에 세월호 추모를 뜻하는 노란색 리본 배지가 눈에 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다음달로 재위 8년째를 맞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비슷하다. 전임 교황에게 은퇴를 청하려던 77세의 고령에, 콘클라베에서 무려 다섯 차례의 투표 끝에 변방의 주교에서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으로 덜컥 선출됐다. 2013년 즉위 뒤 첫 방문지로 지중해 난민 위기의 최전선이 된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을 찾았고, 즉위 초부터 불거져나온 일부 사제들의 성추문에 솔직하고 과감한 사죄와 단죄 조처를 취했다.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돼온 바티칸은행을 과감히 개혁했으며, 사회 정의, 약자의 권익, 환경 문제 등에도 진보적 시각과 추진력으로 바티칸에 쇄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세상에 영감을 주었다. <타임>은 그를 즉위 첫해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세기 앙숙이던 미국과 쿠바 사이를 중재하면서 양국의 관계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최근엔 기혼남성의 사제직 인정을 검토하면서 사제직 독신제 존폐 논란을 낳기도 했다. 파격적일 만큼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행보 때문에 가톨릭 보수파 일부의 반발 분위기도 감지된다.

차이는 불화와 상처를 남기기도, 변화와 치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선택도 결과도 모두 인간의 몫이다. 영화 <두 교황>에서 두 사람이 고해성사로 서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나누는 대화는 이렇다. “고해를 하면 죄지은 자의 영혼을 씻길지 몰라도 희생자를 돕진 못해요. 죄악은 상처이지 얼룩이 아닙니다. 치료받고 아물어야 합니다. 용서는 충분치 않아요.”(베르고글리오추기경) - “신 안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살고 존재합니다. 신과 함께 살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계시지요. 인간이셨던….”(베네딕토 교황)

조일준 국제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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