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라고 번역되는 카테고리(category)는 그리스어 카테고리아(kategoria)에 어원을 두고 있다. 카테고리아의 동사형은 카테고레인(kategorein)인데, 이 말은 카타(kata)와 아고레우에인(agoreuein)이 합쳐서 된 말이다. 카타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다, 내려다보다’라는 뜻을 품은 접두사다. 아고레우에인은 광장을 뜻하는 아고라(agora)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장이 서고 재판이 열리고 민회가 개최되고 연설이 행해지던 곳이다. 아고레우에인은 바로 이 열린 공간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 주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카타와 아고레우에인이 합쳐져 만들어진 ‘카테고레인’은 무언가를 주시하면서 그것에 대해 공중을 향해 말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공개된 재판에서 피고인의 죄를 따져 기소하는 경우에 카테고레인이라는 말을 썼다. 카테고리아는 바로 그렇게 공개적으로 죄를 묻는 것을 뜻하는 명사다. 이렇게 어원을 살펴보면, 카테고리로 묶는다는 말은 누군가를 죄인으로 지목해 널리 알린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미국이 제3세계의 특정 국가들을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에도 이 말의 어원이 서려 있다. 불량국가는 소련의 멸망으로 공산주의라는 적이 사라진 뒤 미국이 새로이 적을 규정하려고 만들어낸 용어다. 미국은 불량국가를 국제질서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나라라고 했지만, 실상 이 말은 미국의 패권 질서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나라들을 범주화한 말이었다. 조지 부시 정권은 2001년 9·11 테러 뒤 불량국가들 가운데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선포하고 이라크를 공격해 중동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상황에 격분한 노엄 촘스키는 미국이야말로 제멋대로 국제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량국가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불량국가란 말이 탄생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그 말은 지금도 워싱턴 주류 집단의 입에서 틈만 나면 흘러나온다. 지난달에도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을 ‘불량국가’라고 불러 거센 반발을 샀다. 불량국가라는 범주로 묶는 것 자체가 한 나라를 범죄집단으로 규정하는 낙인찍기다. 미국이 북한과 진심으로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면 이런 잘못된 범주부터 외교 사전에서 지워야 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