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입국장 검역소에서 중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이 건강상태질문서를 제출하고 있다. 영종도/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정도일 줄 미처 몰랐다. 딸아이 배웅하러 간 28일 새벽 인천공항, 영화 <부산행>이 따로 없다 싶었다. 저마다 흰색, 검은색 마스크로 입을 가렸다. 서로가 서로를 꺼리는 기운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누구랄 것 없이 신경이 곤두서 있다. 기침 소리만 들리면 주변은 홍해처럼 갈라진다. 중국어가 들리면 상황은 좀 더 심각해진다. 방향을 틀어 최대한 멀찌감치 움직인다. 뒤이어 혐오와 배제의 속삭임이 터진다. “중국 애들 정말 더러워. 어떻게 박쥐를 먹니?” “도대체 몇번째야. 병이라는 병은 걔들이 다 옮겨.”
민심은 4월 총선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른바 ‘우한 폐렴’에 전염됐다.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와대 국민 청원글은 닷새 만에 동의가 50만명을 넘어섰다. ‘9만명 감염’ ‘강남 클럽에서 중국인을 다 들어냈다’는 근거 없는 얘기도 나돈다.
전염병은 항상 있었다. 중세 흑사병, 1918년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엄청난 사망자를 낳으며 인류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보건의료의 질이 개선되고, 소독과 격리·통제 등 방역 시스템이 갖춰진 2000년대엔 혼란은 있었지만 매번 슬기롭게 위기를 넘겼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까지 21세기 전염병은 적잖은 사망자를 냈지만 지구촌 전체가 적절히 통제해왔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너무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어쩌면 신종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건 일상에 창궐한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다. 특정 국가, 특정 문화, 특정 인종, 특정 성별, 특정 집단, 특정 계층, 특정 연령에 대해 근거 없는 적대감을 드러내며 혐오를 부추기고, 배제를 합리화하는 건 정확한 원인 규명과 적절한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동시에 공동체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다.
우리는 작든 크든 끊임없이 누군가를 혐오하고, 그를 근거로 배제를 합리화해온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7년 무릎 꿇은 엄마들의 호소에도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인 서울서진학교는 아직 문을 열지 못했다. 올해 3월에 개교할 예정이지만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주민 민원으로 여러차례 공사가 지연된 탓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문화복합시설 어울림플라자는 주민 반대로 착공도 못 했다. 2018년 기준 보건복지부 등록 장애인은 259만명. 인구의 5%가 ‘공인된 장애인’이지만 그들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다.
지난해 65살 이상 ‘노령 인구’는 802만6915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인구의 15.5%로 고령사회로 진입했지만 전국 곳곳에서 노인병원, 요양병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진다. ‘100세 시대’를 외치고, 자신도 늙고 병들 것을 알면서도 병든 노인을 혐오하고 배제한다.
아파트 브랜드로, 주거 형태로 이웃과 친구를 혐오·배제하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월(세)거지, 전(세)거지, 빌(라)거지, 휴(먼시아)거지….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이런 말은 우리 사회에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주택단지 주민의 진입을 막기 위해 대단지 아파트 보행로를 차단하고 놀이터에 철조망을 치더니, 이젠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외부 차량에 통행료를 징수하고 나서 주변 주택단지 주민과 소송까지 벌어진다. 대학은 물론 초·중·고교, 아예 유치원과 동네 학원까지 등급을 나누며 자신과 다른 집단은 “수준 낮다” 비웃고 “물을 흐린다”고 혐오하고 배제한다. 집값 폭등으로 이제 서울 강남은 강북을, 강북에선 또 다른 강북 지역을, 서울은 지방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세상으로 치닫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혐오와 배제를 부추겨온 언론, 끊임없이 내 편 네 편을 갈라치는 정치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갈라침을 주도한 ‘제 잘난 줄 아는 부모들’, ‘포용 없는, 저급한 일등만 강요해온 어른들’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만큼이나 우리 안에 뿌리 깊은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 퇴치도 절실하다. 공동체를 괴사시키는 이 바이러스를 퇴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를 표적 삼아 혐오와 배제를 부추길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신승근 ㅣ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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