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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고백하는 국가 / 김진해

등록 2020-02-02 19:15수정 2020-02-03 17:08

김진해 ㅣ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설날 아침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성전환 군인의 기자회견을 보고 용기를 내어 자신도 커밍아웃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자유와 행복을 놓치지 않겠으니 당신들도 응원해 달라고 한다. 양가에도 얘기했고 조만간 이혼도 하겠다고 고백했다.

고백은 숨겨둔 마음의 목소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힘이 다른 어떤 위력보다도 세고 간절할 때 감행한다. 말의 진실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과거를 말하는 듯하지만 현재와 미래가 모두 연루되는지라 시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고백은 성스럽다.

문득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고,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자기 집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신내림을 받았다고,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해 엄마랑 살고 있다고 ‘씩씩하게’ 고백하던 학생들 모습이 겹쳤다. 다행히 나는 국가가 아닌지라, 그들의 말에 별다른 가치 판단이나 지침을 내릴 자격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밥 한 그릇 술 한잔 같이하는 게 전부다.

그 고백이 국가를 향할 때가 있다. 비난과 낙인의 위험을 감내하고 최대의 용기를 내어 국가에 말을 거는 개인이 늘고 있다. 변희수 하사의 고백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역시나 비루했다. ‘불허, 나가!’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였지만, ‘전례’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국가는 과거에 매달렸다. 법과 규정이 아닌 진실의 힘으로 말하지 못했다. 국가는 이번 ‘첫’ 사례 앞에서 군인(사람)의 의미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고백하는 국가는 고백하는 개인들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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