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2030 리스펙트] ‘청년 사랑’ 정당의 지루한 쇼 / 곽승희

등록 2020-02-02 19:17수정 2020-02-03 02:36

곽승희 ㅣ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센터장

하마터면 내 개그 능력에 자부심을 가질 뻔했다. 회사를 다닐수록 내 이야기에 웃어주는 구성원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이 개그 취향의 34년, 이제야 ‘포텐’이 터지는가 설렜다. 착각은 얼마 전 첫 회식 자리에서 접을 수 있었다. 많은 웃음과 리액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평가를 받은 후 더 이상 진실에 눈감을 수 없었다. 누구라도 입사 10개월 만에 뛰어난 개그머신이 될 수 없다. 센터장의 이야기에 비웃음을 날릴 일반 사원을 만나기 어려울 뿐이다. 이런 자기성찰이 가능한 이유는 독립활동가 시절이 뜻깊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소속 없이 활동하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독립활동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당장의 화폐자본 획득보단 나름의 이상 실현에 애쓰는 사람’. 전통적인 의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달리 소속이 없다.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 그 자체로 배움이었다. 다만 피드백을 주고받을 회사 동료가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혼자 글을 쓰며 성찰과 회고를 반복했다. 어느덧 자기소개에 ‘취미가 성찰’이라는 말이 붙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활동 사이사이 강연이나 회의 참석 요청이 오면 금액과 상관없이 받아들였다. 믿었기 때문이다. 비영리조직이 기준 없이 금액을 제시할 리도 없을뿐더러, 그 예산을 아껴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나를 착취하진 않을 테니.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지속성을 만들 기회니까. 이런 상황에서 청년 공간의 커뮤니티 지원 사업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었다. 인건비는 없지만 새로운 사회참여 활동에 뛰어들 때 마이너스 카드를 긁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경험 덕분에 신림동쓰리룸은 ‘나다운 길’을 걷는 청년들이 자신만의 브랜드와 콘텐츠를 잘 쌓을 수 있는 지원 사업에 관심이 많다.

최근 한 청소년 기관으로부터 ‘자신의 일 실험과 도전 과정을 청소년에게 전할 수 있는 청년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특별한 자격증 세트나 성공 스토리가 없어도, 자기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청년이라면 청소년 진로 특강 강사로 서도록 연계하자는 제안이었다. 청년은 브랜드를 만드는 기회를 얻고, 청소년들은 다양한 진로 이야기를 듣는 이 사업은 몇 년 전부터 가끔 진행됐으며, 정규 수업으로 안착하도록 시도 중이라고 했다.

중간에서 섭외를 진행하던 중 문제가 생겼다. 양쪽을 연결할 때 정제된 언어로 충분한 설명을 못한 내 불찰이 그 시작이었고, 기관이 제시한 ‘강사료’ 금액은 핵심 쟁점이었다. 한쪽은 비현실적인 강사료를 올리라고 요구했다. 다른 쪽은 사업 예산을 이유로 거부했다. 전자는 청년 착취 사업으로 의심했고, 후자는 학교의 지급 가능 예산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메일과 만남을 통한 긴 소통 과정이 이어졌다. 혹자는 불참했고, 혹자는 참여했다. 청년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참여자를 위한 보상을 늘리고, 기회를 생태계로 만드는 일의 지난함을 엿봤다. 자기성찰 능력을 활용하여 과정을 회고하는데, 이에 대해 책임이 있는 집단이 떠올랐다.

청년 세대의 실험과 시도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란, 청년 당사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99%가 청년이 아닌 국회도, 60대 정치인이 대표인 정당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뭘 했는지 궁금하다. 총선 직전 치르는 ‘청년 인재’ 영입식, 현장에서 보기엔 너무나 지루한 쇼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1.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2.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60cm 면도날 철조망’ 세운 경호처…윤석열 오늘은 체포될까 3.

‘60cm 면도날 철조망’ 세운 경호처…윤석열 오늘은 체포될까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4.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지리산에서…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5.

지리산에서…어제 만난 약초꾼, 오늘 만난 스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