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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한국 검찰은 2012년 이집트 검찰의 데자뷔?

등록 2020-02-03 17:45수정 2020-02-04 09:30

정의길 ㅣ 선임기자

이집트 최초의 민주적 선출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는 지난해 6월17일 옥사했다. 그는 사망 당일 재판정에서 방음 유리 우리에 갇혀서 재판받다가 쓰러져 사망했다. 두달 뒤 한국에서는 ‘조국 사태’가 시작돼 여진이 지속된다. 무르시의 죽음과 조국 사태를 연계하는 것은 이 사태들에 기시감이 있기 때문이다.

무르시의 비극적 죽음을 이끈 선봉은 법조 세력이었다. 무바라크 시절의 검사와 판사들이었다. 2011년 2월 민중 시위에 밀려 무바라크가 하야한 뒤 치른 의회선거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정당인 자유정의당이 승리했고, 자유정의당의 대선 후보 무르시도 당선이 유력시됐다. 구체제 세력들은 이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2012년 새해 들어 반무바라크 시위가 시작된 1주년 기념행사를 맞아 군부를 비난하는 전단을 뿌린 시민단체 회원들을 검찰이 국가전복 혐의로 체포했다. 군부는 무바라크 퇴진 뒤 최고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었다. 검찰은 무바라크의 부패와 학살 혐의보다는 군부 통치에 대한 위협을 중시하며, 군부의 하수인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무르시의 당선이 확실하던 대통령선거 이틀 전인 2012년 6월14일 최고헌법재판소는 의회선거가 비례대표제 등을 위반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군부의 최고군사위원회는 곧 의회 해산을 명령했다. 이때부터 무르시는 군부가 배후인 법조 세력과 싸우는 데 국정운영 역량을 탕진해야 했다.

취임한 무르시로서는 국정을 운영할 의회가 증발한 상태가 됐다. 무르시는 해산된 의회를 재소집하는 한편, 연말로 예정된 신헌법 제정 뒤 새로운 의회선거를 치른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헌재는 무르시가 의회를 재소집할 권한이 없다며, 무르시를 법원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검찰은 무바라크 하야의 결정적 계기가 된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를 죽인 폭도 24명에게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해 석방했다. 무르시는 검찰총장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으나, 검찰의 반무르시 전선만 강화됐다.

해산된 의회가 구성한 헌법회의의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도 구체제 세력들이 제기해, 법원에서 그 해산 결정이 임박했다. 의회도 없고, 신헌법을 제정한 헌법회의의 해산마저 어른거렸다. 무르시는 11월 들어 신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자신의 결정이 사법부의 판결 대상이 아니며 최종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하면서, 헌법회의 해산 등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반대 세력들은 즉각 ‘현대판 파라오’라고 비난하며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에 들어가 혁명 세력은 분열되어갔다. 무르시 지지 세력이 헌법회의 해산 결정을 막으려고 법원에서 시위를 벌이자, 이에 대항한 판검사들은 재판과 국민투표 주재를 거부하는 거리시위까지 나섰다. 판사들은 또 자신들의 은퇴 연령 축소에 항의하는 태업과 시위를 벌였다. 반정부 세력은 신헌법이 이슬람주의적이라고 대대적인 헌법 거부 시위에 나섰다.

결국 법원은 2013년 3월 무르시 정부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한달 뒤 있을 4월 총선을 무효화했다. 의회도 없고, 제정된 신헌법도 표류하고, 새로운 총선마저 무산되자, 무르시 정부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6월 들어 반무르시 시위가 본격화됐고, 7월3일 압둘팟타흐 시시 당시 국방장관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1년간에 걸친 판검사들의 유례없는 정권타도 투쟁은 완성됐다.

이집트 법조 세력은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무르시 정권에 맞서 세속주의 법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무르시 실각 이후 그들이 보여준 세속주의 법질서 운영은 기득권 체제 수호에 불과했다. 검찰과 법원은 쿠데타 한달 만에 무바라크의 학살과 뇌물 등 부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며 석방해줬다. 시시의 쿠데타 정부는 무르시의 퇴위에 반대하던 시민 수백명을 학살했으나, 검찰과 법원은 모른 척했다. 오히려, 시위에 참여한 시민 350여명을 체포해 기소한 뒤, 5년 뒤인 2018년 23명에게 종신형을 내리는 등 250여명에게 15년 이상의 중형을 받게 했다.

무르시는 구체제 청산보다 보수적인 이슬람주의를 국정운영 기조로 삼으려 했던 국정운영 실수에 책임이 있다. 이집트 법조 세력이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그 틈을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치고 들어왔다. 조국 사태와 무르시의 죽음에서 기시감을 느끼고,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은 이집트 법조 세력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반응인가?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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