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먹고 싶을 때 ‘냉면 먹자’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살이 쉽지 않아 그 말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뭐 먹을래?’라고 하면 메뉴 결정을 상대방에게 모두 맡기는 거라 마뜩하지 않다. 타협책으로 두 개 정도의 후보를 말하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슬쩍 집어넣는다. 이럴 때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먼저 말하는 게 나을까 나중에 말하는 게 나을까?
말실수도 그렇지만, 말하기의 순서에서도 무의식이 드러난다. 심리학에서는 맨 먼저 들은 말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의견(초두 효과)과 제일 늦게 들은 말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의견(최신 효과)이 팽팽하게 갈린다. 면접이나 발표를 할 때도 맨 먼저 하는 게 유리한지 마지막에 하는 게 유리한지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 같아서 내 욕심을 앞세우더라. 지인과 저녁 약속을 하면서 “족발 먹을래 매운탕 먹을래?” 했다. ‘다행히’ 눈치 빠른 그는 족발을 택해 주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 ‘정의롭고 쾌활하지만 뒷말하기 좋아하고 고집스러운 사람’과 ‘고집스럽고 뒷말하기 좋아하지만 쾌활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 같다.
우리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말의 순서까지도 골몰한다. 먼저 말하기, 나중 말하기, 중간에 끼워 말하기를 적절히 택한다. 듣는 사람도 능동적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읽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하는 직원이 “배가 고프지만, 참을 수 있어요”라고 말할 때, 당신은 밥을 살 건가 계속 일을 시킬 건가?
김진해/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