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ㅣ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도널드 트럼프는 마치 무너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2016년 대선 때 수많은 스캔들에서 살아남았고, 임기 첫해에 측근들 기소와 수많은 외교 실패, 말실수 등 무수한 위기를 견뎌냈다. 이제 탄핵도 이겨냈고, 지지도는 최고치인 49%로 올랐다.
트럼프는 올해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국제적 명성을 되찾았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경제가 기록적으로 높은 주가와 낮은 실업률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국제적 명성은 누더기가 됐고, 빚 위에서 덩치를 키운 미국 경제는 위태롭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주장들에 계속 도전해왔다. 하지만 탄핵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좌절한 민주당은 투덜거리는 것 외에 별수가 없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의 국정연설문을 찢었다.
한편, 지난 3일 열린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는 민주당에 달갑지 않은 3개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첫 번째는 결과 발표를 지연시킨 소프트웨어 오작동이다. 두 번째는 선두 주자로 꼽혀온 조 바이든이 피트 부티지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에 밀려 4위로 주저앉은 것이다. 세 번째는 버락 오바마가 처음 출마했을 때인 2008년과는 딴판으로 낮은 투표율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단합을 구축해왔지만 민주당은 무능하고, 열기 없고, 분열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탄핵을 피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위반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 같은 대통령 권한 행사는 미국에 몹시 위험하고, 트럼프 자신에게도 위험하다. 자신을 아무도 꺾을 수 없다는 트럼프의 믿음은 그의 과거 몇 가지 실패의 핵심 요인이다. 그는 무모하게 호텔과 카지노를 확장하고 항공 사업에도 뛰어들었다가 파산을 겪었고, 대학·잡지·보드카 사업도 실패했다. 트럼프는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가 자신과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공모 의혹에 완전히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하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정확히 똑같은 행동을 했다.
상원의 탄핵심판에서 무죄 결정을 받은 트럼프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자폭’할 수 있다. 우선,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은 완벽하다고 믿고 외국에 2020년 대선에 개입할 것을 더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등 또 다른 헌법 위배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공화당 지지자들은 떨어져나가지 않겠지만, 나머지 국민은 등을 돌릴 것이다. 또 자기 확신 때문에 자신의 지지 기반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선거운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당파를 잡고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투표율을 높이는 데에도 돈을 쏟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많은 게 민주당과 최종 후보에 달렸다. 바이든은 ‘내가 트럼프를 꺾을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주장을 넘어서는 열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부티지지는 바이든의 예전 모습, 즉, 중도정치를 하는 젊은 케네디 같은 정치인이다. 샌더스는 가장 급진적 정책과 헌신적인 지지자들을 갖고 있다. 워런은 샌더스와 같은 사회주의나 바이든·부티지지 같은 건조한 자유주의가 아닌 개혁 정책으로 당의 급진파와 온건파를 통합하겠다고 약속한다.
민주당은 작년 11월 <피비에스>(PBS) 등이 한 여론조사를 유의 깊게 봐야 한다. 이 조사에서 사회주의자 후보(20%)에 대한 열의가 가장 낮았고 여성 후보(71%)에 대한 열의가 가장 높았다. 백인 남성에 대해서는 58%, 40살 이하 후보에는 52%, 70살 이상 후보에는 38%가 열의를 보였다. 이 조사가 정확하다면, 샌더스는 트럼프를 이길 만큼 충분한 지지를 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샌더스는 투표율이 낮은 곳에서는 열성 지지자들이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아이오와주 같은 곳에서는 선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 단위에서는 다르다. 이 조사에서 또 알 수 있는 건 미국이 여성 대통령을 뽑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이 확정된 건 아니다. 민주당은 왕이 되려 하는 트럼프를 끌어내리기 위해 더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열기를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