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집은 무엇으로 짓는가? 물론 콘크리트로 짓거나 유리나 철로도 짓지만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생각이다.
먼 옛날 들판에서 살며 사회생활을 하던 인류가 제일 처음 만든 공간은 집이다. 그때 우리의 조상은 비 가리고 바람 막는 구조물을 만들며, 가장 먼저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고 안온한 가족의 풍경을 머리에 그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집을 통해 이어졌고 우리는 여전히 집을 짓고 가족과 살고 있다.
건축가로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집을 짓고 싶은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죠?” 하는 것이다. 우선 땅이 있어야 하고 자금도 필요하고 여러 가지 준비 사항이 많겠지만, 나는 “먼저 집의 이름을 지어보세요”라고 대답해준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를 낳을 즈음에 이름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는 겪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고 그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고 아이에 대한 기대를 담는다. 집의 이름을 짓는 것도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의 자세를 정하는 것이고, 가족의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여유당, 서백당, 선교장, 산천재 등등 옛날 사람들의 집에는 각자의 생각을 담은 집의 이름, 즉 당호가 있었다. 다산 정약용의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얼핏 주는 인상처럼 여유 있고 느긋하게 살자는 의미가 아니다. 무척 조심하고 조심하라는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에서 두 글자를 따왔다. “겨울에 찬 시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머뭇거리고(與),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경계한다(猶).” 잘나가는 관료이자 학자로 살다가 인생의 풍파를 만나 오랫동안 귀양살이로 고생한 그의 인생의 회한이 담긴 작명이다.
또한 그의 맏형님 집 이름은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뜻의 ‘수오재’(守吾齋)다. 정약용은 나 자신을 지키지 않는다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며, 처음에는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여러 고난을 겪은 뒤, 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깨닫고 특유의 명징한 문체로 쓴 ‘수오재기'라는 글을 남겼다.
요즘 사람들이 집에 붙이는 이름에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존경과 행복의 집’은 남편과 부인이 추구하는 두가지 가치를 병치한 이름이고, ‘적당과 작당의 집’은 “알맞게 누리고 즐거운 생각을 하자”는, 부모가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생에 대한 자세를 담은 이름이다.
집이란 그런 생각의 집적체이며,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생각을 정리해서 집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집은 생각으로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