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탄핵이 그리 가벼운 말인가 / 백기철

등록 2020-02-13 18:33수정 2020-02-14 02:38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지난해 12월6일 송병기 울산광역시 부시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지난해 12월6일 송병기 울산광역시 부시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놓고 보수 야당과 언론의 공세가 거세다. 검찰 공소장 비공개 논란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일을 키우더니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이 알려지자 파상공세다.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진상을 밝히고 문재인 대통령의 연루가 드러나면 탄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때 그렇게 설쳐대던 진보 지식인들이 ‘선거농단’엔 왜 이리 조용하냐고도 한다.

거칠게 운을 떼자면, 공소장에 적힌 내용만으론 무슨 농단이라 하기 어려워 보인다. 울산 사건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초대형 선거농단이고, 문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벌써부터 흥분하는 건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본령은 대통령을 뒷배로 특정인이 대기업들한테 수백억원을 뜯어낸 상상을 불허하는 사태였다. 최순실 딸 정유라와 조국 딸이 뭐가 다르냐고 하는데, 최순실 농단의 중심은 입시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으로 대표되는 ‘삼각 이권 농단’이 그 뼈대다.

울산 사건 공소장을 훑어본 일감은 선거개입의 줄기를 이리저리 얽어놨지만 이를 관통하는 연결고리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소장엔 선거 때 정권 수뇌부 움직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비리 수집 및 수사 지시, 선거공약 조율, 공천 무마 등이 가닥인데, 이 모든 게 누군가 감독 아래 일사불란한 작전처럼 진행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경찰이 울산시장 측근 비리 수사에 나선 게 청와대 지시라는데, 경찰은 의욕적으로 토착비리를 수사했다고 반론한다. 공천 대가 제공 여부도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말이 엇갈린다. 선거공약을 여러 인물과 기관이 조율했다는데 이 정부가 그렇게 유기적으로 움직였을까 싶다.

대통령이 몇번 언급되고, 청와대 몇몇 부서가 등장했다고 마치 배후 총책인 것처럼 몰고 가는 건 심하다. 공소장 내용이 마치 확정된 범죄사실인 양 형량까지 비교하며 언급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혐의사실 중엔 실제 위법한 내용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눈감아줄 수는 없다. 대통령도 연루됐으면 책임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읍참마속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일별해보면 사건 무게와 파장이 나오게 마련이다. 국민들이 누구보다 먼저 이를 감지한다. 사건의 주요 피의자 중 구속된 인물은 아직 없다. 최순실 농단 땐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그렇다고 가벼이 넘길 일도 아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이 남았으니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이번 건을 연결하는 것도 무리다.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해달라”는 발언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걸 두고 이번 건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한다. 노무현 탄핵은 당시 야당들이 정치적으로 야합한 일종의 일탈이었다. 국민이 총선에서 ‘탄핵 놀음’을 심판했고, 헌법재판소도 차마 인용하지 못했다. 노무현 탄핵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선거개입 문제는 역대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이명박 정부에선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해 온라인 댓글을 조작했다. 박근혜 청와대는 당 경선에 개입하고 불법 여론조사를 한 게 적발돼 박 전 대통령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박근혜 탄핵 사유는 선거개입이 아니라 최순실을 위해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때문이었다. 현 정부에서도 어찌 됐든 선거개입 문제가 불거졌다. 예단 없이 사건 실체에 걸맞게 처리하면 된다.

박근혜 탄핵은 순식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 정호성 휴대폰이나 안종범 수첩 등 대통령 연루의 결정적 증거가 나오고서도 한참 뒤에야 이뤄졌다. 당시 야권과 시민사회는 섣불리 탄핵을 거론할 경우 역풍을 우려해 거국내각,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의 요구를 내놨다. 박근혜가 모두 거부하고 반성하지 않자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탄핵한 것이다.

검찰이 앞으로 철저히 수사해서 증거를 찾아내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윤석열 검찰더러 여태껏처럼 ‘인디언 기우제’ 식으로, ‘나올 때까지 파라’는 건 곤란하다. 그런 식의 수사는 용납하기 어렵다. 이 정도 얼개로는 결과를 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의 설움을 한방에 되갚아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탄핵으로 몰고 가면 낭패할 수 있다. 탄핵은 그리 가벼운 말이 아니다.

백기철 ㅣ 논설위원

kcbae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위기의 삼성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한겨레 프리즘] 1.

위기의 삼성에서 바뀌지 않은 것 [한겨레 프리즘]

[사설] 계속 쏟아지는 윤-김 의혹, 끝이 어디인가 2.

[사설] 계속 쏟아지는 윤-김 의혹, 끝이 어디인가

트럼프 2.0, 윤 대통령 ‘가치 외교’가 설 자리는 없다 [박현 칼럼] 3.

트럼프 2.0, 윤 대통령 ‘가치 외교’가 설 자리는 없다 [박현 칼럼]

검찰, 이대로면 ‘명태균 지시’ 따른 셈…예상되는 수사 시나리오 4.

검찰, 이대로면 ‘명태균 지시’ 따른 셈…예상되는 수사 시나리오

섬으로 들로…꿀벌 살리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5.

섬으로 들로…꿀벌 살리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