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람들이 질병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알려면 말을 둘러보라. ‘감기, 골병, 멍’은 ‘든다’고 하지만, ‘배탈, 종기, 욕창’은 ‘났다’고 한다. ‘노망’은 나기도 하고 들기도 한다. 질병을 무서운 인물로 의인화하여 ‘암, 심장병, 대상포진, 감기, 에이즈’에 ‘걸렸다’고 하기도 한다. 몸의 안팎을 드나들거나 괴롭히는 존재.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거나 주변을 떠돌다가 몸 안으로 불쑥 기어들어 오는 존재. 이런 표현들은 모두 은유이다. 인격체가 아닌데도 마음대로 몸을 드나들며 괴롭히는 존재로 상상한다.
코로나에는 ‘감염되다’라는 말을 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녀석은 우리를 몰래 ‘물들여’ 며칠 숨었다가 모습을 드러내니 더 두렵다. 그래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만 하면 감기 대하듯 할 것이다.
니체는 ‘질병 자체보다 자신의 질병을 생각하느라 고통받지 않도록 병자들의 상상력을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곤경에 처해 있지만, 이 곤경을 신의 심판이나 인과응보로 볼 일은 아니다. 이 일이 다 지나간 뒤에 우리는 어떤 언어로 바이러스의 창궐을 생각하게 될까. 어떤 이들은 질병을 친구로, 삶의 여정에 오는 손님으로, 삶의 일부로 대하자고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질병을 침략자로 보고 삶과 죽음을 적대적 관계로 보는 언어를 몰아내지 않으면 삶과 죽음을 제대로 대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은유 없이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제하고 피하려 애써야 할 은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수전 손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