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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비합리적이나 헤어날 수 없는 ‘포비아’ / 신승근

등록 2020-02-25 17:38수정 2020-02-26 02:08

흑사병을 겪은 중세 유럽인들은 전염병이 돌 때면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전염병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은 합리적 의심 없이 학살에 동참하고 게토를 무참히 파괴했다. 공포는 비이성적 행동을 합리화했다.

역사에서 유사 사례는 쉽게 확인된다. 1923년 9월 간토 대지진으로 십여만명이 사망하자 일본은 “조선인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 일본인 습격에 나섰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조선인 포비아’에 사로잡힌 일본인은 조선인 수천명을 무참히 학살한다.

‘포비아’(phobia·공포증)는 특정 물건, 환경 또는 상황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극심한 공포 때문에 스스로 비합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피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국한되어 발생하는 공포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공포는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이고,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 (중략) 환자 본인은 이러한 공포가 너무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임을 알고 있으며, 일상생활이나 기타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는 ‘포비아’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 포비아’에 깊이 빠져들었다. 애초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해 특정 국가, 특정 집단에 대한 포비아로 확산한다. 초반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에 대한 혐오가 일더니 이젠 광범한 ‘중국 포비아’로 번졌다. 최근 대구 신천지 교회와 경북 청도대남병원이 대규모 확산의 진원지로 드러나자 특정 교파, 특정 지역에 대한 포비아로 진화하고 있다.

포비아의 특징인 비합리성도 또렷하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를 압박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를 ‘코로나의 숙주’라고 비난한다. 이스라엘, 마카오, 모리셔스 등이 한국인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거나 억류하자 이제 전세계가 ‘코리아 포비아’에 빠졌다고 대서특필한다. 지나친 비약이고, 자책을 넘어선 자기비하다.

포비아를 조장하는 이들은 나름의 노림수를 갖게 마련이다. 일부 정치권과 보수 언론이 포비아를 부추기는 건 4·15 총선을 겨냥한 계산된 행동이 아닐까,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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