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22년 7월 의정부가 “이제부터는 … 조신 중에 나이 70살 이상인 사람은 … 직무를 해면하여 늙은이를 공경하는 뜻을 보이자”고 제안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계기로 70살이 되면 관직을 그만두는 치사(致仕)제도가 도입됐다. 조선시대판 정년제인 셈이다.
정년은 “직장에서 물러나도록 정해진 나이”를 뜻한다. 우리나라는 2016~17년 60살 정년제를 처음 도입했다. 근대 이후 퇴직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는 19세기 말 비스마르크 총리 때의 독일이다.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노동자가 70살이 되면 연금을 지급했다. 마르크스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선진국은 이후 제각기 정년을 도입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일제히 정년을 연장·폐지하는 추세다. 미국은 1978년 정년을 65살에서 70살로 올린 뒤 1986년 없앴다. 나이가 많다고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독일은 현재 65살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살로 높일 계획이다. 일본은 2006년 정년 65살 미만 기업에 대해 △65살까지 정년 연장 △정년 뒤 계속고용 △정년 폐지 등 세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의무화했다.
정년을 연장·폐지하는 배경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인구가 줄고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득 저하와 성장률 하락을 낳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1일 고용노동부에 60살 이상의 고용 연장 방안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 일본식 ‘계속고용제도’가 연구 대상이다.
우리의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이 1 미만인 유일한 나라다.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은 ‘인구절벽’이 당장 올해부터 시작된다.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악이다.
우리에게 정년·고용 연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인건비 증가, 청년고용 위축 등을 내세우는 재계의 반대나, 노년층 표를 겨냥한 총선용이라는 비난이 공감을 얻기 힘든 이유다. 정년·고용 연장은 자연스럽게 연금 지급 시기 후퇴와 맞물린다. 건강할 때 은퇴해서 연금을 받으며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펼치는 ‘꽃보다 정년’은 점점 꿈이 되고 있다.
곽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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