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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그들이 없으면 안전해질까 / 조기원

등록 2020-02-27 18:14수정 2020-02-28 09:35

조기원 ㅣ 도쿄 특파원

도쿄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가 달라졌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예년 이맘때면 거리에서 일본어가 아닌 다른 국가의 언어가 자주 들리기 시작한다.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언어는 중국어였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은 959만4400명으로, 전체 1위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관광객들의 대화 소리는 확연히 줄었다. 번화가 소매잡화점 중 한 곳은 평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볼륨을 높여 중국어 안내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꺼졌다. 이 소매잡화점에서는 여행용 가방을 세워놓고 각종 잡화를 사가는 관광객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달 초에는 지하철 출구 계단에서 한눈에 봐도 꽤 무거워 보이는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관광객을 오랜만에 목격했다. 가슴에는 스티커가 한장 붙어 있었다. 대만 지도를 배경으로 일본어로 “나는 대만인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즈음 일본 정부는 날마다 철저한 검역을 강조했다. 외부 사람을 차단하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중국 후베이성과 저장성 체류 이력이 있는 외국인 입국 제한 조처를 한 뒤에도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중국인 전체 입국 제한 조처를 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일본 정부가 집어들기는 어려운 선택지다. 더구나 일본 내 지역사회 감염은 최소한 이달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감염 경로를 추정하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자 감염 차단을 위해 불가피한 최소한의 격리가 아니라 혐오가 곳곳에 똬리를 튼다. 화살도 이곳저곳을 향한다. 일본재해의학회는 지난 22일 코로나19 방역 작업에 참여한 의료 관계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항의 성명을 냈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이들의 하선이 일단락된 뒤의 일이다. 크루즈선에는 여러 의료 관계자가 파견됐고 일부는 감염됐다. 재해의학회는 “현장에서 인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도 위험에 처하면서 활동한 의료 종사자가 (현장에서 복귀 뒤) 직장에서 ‘세균’ 취급을 당했다”며 “직장 관리자한테 현장 활동에 대해 사죄를 요구받는 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한 처우를 받는 사태가 보고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투명하지 않은 대응은 불안감을 자극한다. 겉으로 보이는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26일 기준 186명이다. 이 수치를 보면 비교적 잘 통제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발생한 감염 사례 705건은 제외된 수치다. 일본 정부는 상륙 전에 발생한 감염이라는 이유로 크루즈선 감염자 수는 공식 통계에서 뺐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6일 낮 기준 바이러스 검사 건수도 1890건(크루즈선 제외)으로 한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후생노동성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한 검사는 바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전체 검사 규모는 안갯속이다.

불안은 크고 정보는 부족하니 ‘나 아닌 누군가’를 격리·배제하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진원지인 중국을 포함해서 각국에서 외국인 입국을 거부하거나 격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처럼 전염성이 강한 병에 대해 검역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오히려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검역에 거는 기대가 너무 커지면, 감염자가 감염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워져 감염 확산 차단이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고 경고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서로를 격리하고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의심하는 세상은 섬뜩하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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