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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우리는 함께 안전할 것이다 / 김영희

등록 2020-03-03 18:12수정 2020-03-05 16:59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의 주변에서 맴도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역 경의선 출구에서 직장인들이 무거운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코로나 바이러스가 삶의 주변에서 맴도는 가운데 3일 오전 서울역 경의선 출구에서 직장인들이 무거운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응급병동 입원실에서 어머니의 간병인으로 최근 3박4일을 보냈다. 노약자들이나 기저질환자들이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병원 가기를 기피해 제때 치료를 못 받을까 걱정이라고 지난 2주 내내 사설에 써왔는데, 바로 내 가족이 그런 경우가 된 셈이다.

“티브이 켜기도 싫다. 온통 코로나 얘기니 우울하고 더 열이 나. 병원은 위험하고.” 전화 너머 80대 아버지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공기 전파도 아니고, 큰 병원은 감염 관리도 더 철저하니 걱정 마세요”라고 당부하곤 했다. 하지만 어깨 통증이 부쩍 심해져 동네병원에 다니던 70대 어머니는 어찌해야 할지, 감기약을 먹는 사이라도 연로한 분들이 미묘한 상황을 전화 상담할 곳은 있는지, 나 또한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방역당국이 끊임없이 이 병의 특성과 예방지침을 설명하지만, 그것만으로 걸러지지 않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우의 수가 사람들 삶엔 얼마나 많은가.

딸의 종용으로 다행히 어머니는 응급실에 가 통증 원인을 밝히고 적절한 긴급 입원치료도 받았다. 가족도, 국가나 지역사회의 돌봄도 닿지 않는 이들에겐 힘든 일일 게다.

감염병을 통해 우리는 모든 질병이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현실을 똑똑히 목격 중이다. 오랜 세월 ‘잊혀진 존재’였던 청도대남병원 사람들은 ‘코로나19 사망자’로 비로소 사회에 불려 나왔다. 대구지역 자가격리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사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장애인단체의 호소도 이어진다. 얼마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의 대국민조사에선,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7.2%가 아무도 없고 52.8%가 1~2명이라고 답했다. 에스엔에스(SNS) 세대는 ‘스마트 워크’의 효용성을 절감하고 아이들과의 ‘아무놀이 챌린지’를 유튜브에 찍어 올려 서로 연결됨을 느끼지만, 현실엔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거나 에스엔에스가 낯선 이들이 훨씬 많다. ‘선별진료소’나 ‘비말감염’ 같은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건강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방역당국 지침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도 2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부터 치료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는 시스템, 뛰어난 진단 기술, 높은 수준의 의료시설과 의료진 등 자부심을 느낄 부분은 많다. 반면 코로나19는 공공의료시스템이 얼마나 부족한지와 함께 각 부문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 방역적인 의미가 거의 없는데도 개인 삶까지 파탄내는 시간별 동선 공개, 아무리 마스크 생산량을 늘려도 한쪽에선 사재기가 한쪽에선 아우성이 나오는 현상, 감염자가 폭증하는데도 신천지 신자 전수조사에 과도하게 장기간 쏠린 역량 투입 같은 문제는 ‘잘못된’ 사회적 반응의 결과이자 되레 이를 증폭시킨다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다만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건, 이런 현상 또한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 축적된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유명순 교수 조사에선 ‘주변에 감염자가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보다 ‘내가 확진자가 돼 비난받거나 추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각자도생’이 생존원리와 가치가 된 사회와 무관한 일일까. ‘민이 참여할 수 없는 의사결정구조’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한 예방의학전문의는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대응이 절실한데, 많은 지자체가 전시성 방역과 과도한 동선 공개를 표준인 양 경쟁한다. 실제 주민들이 다른 시군구와 비교한다. 평소에도 위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구조에 익숙하고 결정에 참여한 경험이 적다 보니, 위기 땐 과도한 요구나 비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위기라고 해서 낮았던 사회안전망 수준이 갑자기 높아질 수도, 공동체의식이 확 커질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난 믿는다. 방법을 몰라서지 우리 대부분은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린다고. 병원에서 <미디어오늘> 기자의 취재수첩을 읽었다. 자신의 임대아파트 앞 병원에 강남구 감염자 2명이 입원하며 불안과 불만이 번지던 주민 오픈채팅방에서, 누군가가 ‘병원분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하자 기적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언제든 걸릴 수 있고 우리 지역사회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안전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다는 감각, 거기서 공공성은 시작되지 않을까. ‘사회적 거리’를 지키면서도 동네를 속속들이 아는 그 많은 종교조직이 ‘집에서 기도합시다’라는 문자에 ‘도움이 필요한 분은 알려달라’는 한마디라도 붙여주면, 아파트 곳곳에서 그런 주민조직 안내가 보였으면 좋겠다. 청도병원부터 나와 내 이웃까지, ‘우리’는 함께 안전할 것이다.

김영희 ㅣ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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