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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리스펙트] 눈먼 자들의 바이러스 / 곽승희

등록 2020-03-08 18:21수정 2020-03-09 02:37

곽승희 ㅣ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 센터장

‘똑똑한 청년’이 ‘이상한 종교'에 빠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한때 그쪽으로 눈이 먼 게 아니냐는 걱정을 들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공감할 수 있다. 특정 논리 체계를 믿은 그들의 마음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우울감에 빠져 있는 당신을, 누군가는 응원해준다. 그들은 당신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당신을 존재 자체로 긍정한다. 이런 관계에서 그들은 종교의 전도자 이전에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된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만큼 관계는 끈끈해진다. 그들의 교리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믿음 체계를 약간만 수정하면 된다. 원래 무신론자였다면, 내 ‘소중한 사람'들의 믿음을 한번 믿어보자 다짐할 수도 있으리라. 절망을 처리하는 면역력과 희망을 생성하는 긍정력이 떨어진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소중한 지인 ㄱ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정황을 발견하기 전까지, 신천지를 그저 그런 사이비라고 생각했다. ㄱ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신천지에 대한 정보를 쌓아나가면서는 판단을 180도 수정했다. 신천지 탈퇴 신도들의 ‘간증'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종교집단이 아니다. 치밀한 방식으로 전도 대상의 사회적 연결망을 ‘절단’ 내 한 사람을 심신미약 상태에 빠뜨린다. 그런데 신천지 문제를 고발하는 게시글만큼이나 신천지 쪽의 해명, 변호 기록도 많았다. 글만 보면 신천지 신도들은 정말 믿는 것 같았다. 자신은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 ㄱ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는 미래에 대한 꿈과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심리적 불안 상태에 처했고, 그때 그를 위로한 것은 신천지였다. 신천지로 삶의 이유를 다시 찾은 듯 보였다.

이미 신천지를 믿기로 결정한 ㄱ의 ‘선택'을 내가 돌릴 수 없어 보였다. 그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내 편의대로 상황을 정리했다. 청년세대의 마음건강, 정신건강이 갈수록 안 좋아진다는 통계를 내 주변에서 이렇게 만나는구나. 이런 일을 일개 개인인 내가 막을 순 없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제도적으로, 윤리적으로 서로 돌봄의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가. ‘내 일’은 아니다. 물론 가족, 커뮤니티, 공동체, 행정의 복지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사회가 모든 사람을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종교처럼 당사자가 믿기로 ‘선택'한 부분이라면 특히나. 그저 그는 운이 없었노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 대신 나처럼 춤에나 빠지지, 에휴… 그렇게 그를 내 세계에서 분리해나갔다.

코로나19 전염 사태에서 그 판단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돌아보는 중이다. 그들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종교에, 나는 배제에, 누군가는 돈에 눈이 먼 채 각자 달릴 뿐이다. 그 질주의 시간에 이미 우리의 손발은 겹쳤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두렵다. 운이 나쁘다면 감염될 테다. 나이는 젊지만 면역력이 약한 나 같은 이들, 기저질환을 가진 가족과 동거하는 이라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더 운이 나쁘다면 확산의 매개체가 될 테다. 행정이 상정한 복지망 밖에 있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지 모른다. 사회와 오랜 시간 분리된 곳에 있던 확진자들이 죽고 있다. 신천지 신도들의 감염세는 계속 이어진다. 휴업과 무급휴직의 공포가 일하는 사람들을 에워싼다.

가장 큰 공포는 반복이다. 예전처럼 지금 역시 눈을 감는 게 아닌지. 두려움과 혐오를 방패로 삼고 그들을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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