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이 지제크 ㅣ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이데올로기적 바이러스들이다. 가짜뉴스와 음모이론이 기승을 부리고, 인종주의가 춤추고 있다.
‘유익한’ 이데올로기적 바이러스도 있다. 국제적 연대와 협력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사고하게 해주는 바이러스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중국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패러독스가 있다. 코로나19 유행은 오히려 우리가 민중과 과학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 공산주의를 다시 새롭게 발명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 2>에는 ‘오지심장파열술'이라는 궁극의 무공이 등장한다. 베아트릭스로부터 다섯 혈점을 가격당한 빌은 짧은 대화 뒤 다섯 걸음을 뗀 후 심장이 파열되어 죽는다. 이 장면에서 매혹적인 건 공격을 당한 시점과 죽음을 맞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죽지 않는 그 순간에도 하지만 죽음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가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 가해진 일종의 사회적 차원의 오지심장파열술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감염증 유행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가해진 오지심장파열술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해온 자본주의 체제를 더는 계속할 수 없다는 징후이고,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은 전세계적 재난 영화에 유토피아적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화 속에서 지구적인 위기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모두 연대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 (재난이 일어나야만 연대와 협력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먼저 이런 국제공조 모델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를 떠올려볼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도 공황에 빠지지 않고 정확한 권고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이런 국제기구에는 지금보다 더 강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범세계적인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달 이라지 하리르치 이란 보건부 차관은 이란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기침을 했다. 이튿날 자신 역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이러스는 민주적입니다. 바이러스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차관과 시민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
게다가 지금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만이 아니다. 폭염, 가뭄, 폭풍과 같은 이상기후도 시시때때로 지구를 위협한다.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는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효율적인 국제적 협력과 연대의 체계를 긴급히 만들어나가야 한다. 코로나19가 안정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위협이, 아마도 더 위험한 형태로 또 다가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상황은 세계경제를 긴급히 재편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 아닌가. 과거 스타일의 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세계경제를 규율할 수 있는 새로운 전지구적 조직, 필요에 따라서는 각 국민국가의 주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조직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반자유주의자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최근 연설에서 “자유주의자라는 이들은 공부한 공산주의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나는 오르반의 말을 뒤집고자 한다. 자유주의자는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그 자유주의자들 중에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급진적 변화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바로 공산주의자 아닐까? 공산주의자는 공부한 자유주의자다. 자유가 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적 원인을 진지하게 공부한 자유주의자, 오직 급진적인 변화로만 그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유주의자일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