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신(1899~1977)과 박순천(1898~1983)은 한국 여성정치 역사에서 늘 맨 앞에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우파 성향의 애국운동·여성운동에서 출발해 나중엔 친이승만과 반독재라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길을 걸었지만, 여성 정치인으로서 겪었던 상황은 많이 오버랩된다.
최초의 여성정당인 대한여자국민당의 당수였던 임영신은 초대 상공부 장관이 되자 “아무리 재색을 겸비했다 해도 도저히 감당할 일이 아니다”라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는 취임 뒤에도 “서서 오줌을 누는 사람들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을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느냐”는 남성 직원들과 맞서야 했다. 박순천이 2대 총선에 대한부인회 후보로 종로갑에 출마했을 당시 선거사무소엔 여성들의 금가락지부터 떡함지·비빔밥이 밀려들어 개인 선거비용이 한푼도 안 들었다고 한다. 이후 야당의 첫 여성 당수까지 됐지만 1967년 야당통합 협상에선 의논 한마디 듣지 못하고 합당안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짓밟힌 건 아무래도 좋으나 전체 여성들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것이니 그들의 울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당시를 회고했다.(<세상을 바꾼 여성정치인들>)
대한여자국민당으로부터 75년, 세계여성의날인 지난 8일 여성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여성의당이 창당됐다. 논의 시작 불과 3주 만에 전국 5개 시도당이 결성되고 1만명 가까운 당원이 모였다. 수십년 전 여성들이 금비녀를 내놨다면 지금 2030 여성들은 에스엔에스를 무기로 삼았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엔 자발적으로 만든 유튜브 영상, 만화, 카드뉴스 등 당원모집 홍보물이 올라왔다. 걸출한 소수 여성운동가에게 의존했던 방식도 아니다. 전체 당원을 상대로 대표 후보를 온라인으로 공모해,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7명의 공동대표를 뽑았다. 지원자 중 10대·20대가 절반이었다고 한다. 여성의당에 따르면, 만 18, 19살이 현재 가입당원의 10%를 차지한다. 디지털성폭력 등에 반대하는 수많은 거리시위와 온라인 청원에서 익명으로 존재하던 이들이 ‘정치의 장’이 열리니 스스로 나선 것이다.
막판에 접어든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지역구 여성후보 비율은 10%대 초반, 정의당은 16%다. 당 차원의 여성정책 공약을 내놓은 곳은 정의당 정도다. 여성의당의 도전은 이런 판에 어떤 균열을 낼까.김영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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