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우수,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목전이다. 이제 기나긴 겨울밤은 많이 닳고 낮의 길이가 더 길어진다. 목련나무 끄트머리에 달린 눈이 도톰해지고 겸손한 노란색을 띠고 있는 산수유가 어느새 꽃을 달고 서 있다. 산수유가 피면 나의 봄은 시작된다.
봄은 희망이다. 봄이 되면 웅크렸던 어깻죽지가 저절로 펴지며 이제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의욕이 솟고 무언가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건축도 희망이다.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가 선호하는 직업 중에는 무척 힘든 일이 많다. 가령 의사를 찾는 사람은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고 법률가를 찾는 사람들은 무언가 골치 아픈 일이 생긴 사람들이다. 물론 사람들의 괴로움을 나누는 일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일 것이나 그 일을 평생 수행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은 누구도 덜어주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는 사람들과 희망을 공유한다. 건축가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희망과 꿈을 가득 담고 나타나며 자신과 가족의 미래, 가족과 같이 보낼 행복한 시간에 대해 우리에게 펼쳐놓는다. 그런 희망을 공유할 때 더불어 행복해진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눠준 건축가가 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라는 칠레 건축가이다. 그는 2016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 그를 건축계에서 주목받게 한 작업은 놀랄 만한 조형이 있거나 화려한 재료로 덮인 집이 아니다. ‘반쪽짜리 집’(Half a house)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 저소득층을 위한 공동주택이다.
30년 된 낡은 빈민가의 100여가구를 재개발하는 사업이었는데, 저예산으로 건축면적 36㎡의 살 만한 집을 제공해야 했다. 그는 지역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지 않고 거주지를 지키면서 앞으로 중산층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필수 설비만 넣은 절반 규모의 집을 짓고 살면서, 각자 바라는 만큼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기대대로 집은 거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점점 채워졌다.
아라베나가 주민들에게 제공한 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희망을 제공하였고, 건축을 통해 누구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세상이 수선스럽고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잔뜩 위축되어 있지만 그래도 자연은 묵묵히 운행하여 꽃을 밀어 올리고 희망을 세상에 뿌리고 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한탄하는 요즘은 자꾸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한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희망의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