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ㅣ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분명 ‘코로나 쇼크’이다. 1973년 10월 세계를 집어삼킨 ‘오일 쇼크’에 비견된다.
오일 쇼크는 전후 부흥에 바탕한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그 제도적 뒤받침인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로 공식적으로 종료되는 파열음이었다. 미국이 주도한 전후 자본주의 세계는 파시즘과 혁명이 부른 양차 대전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분배와 성장을 조화시키지 않는다면, 파시즘과 혁명의 파고가 다시 높아질 것으로 봤다. 유럽의 복지국가 체계가 세워지고, 미국에서 최고 소득세율이 91%까지 책정되는 분배 정책이 시행됐다. 이 분배 정책은 전후 부흥이라는 동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완전고용을 달성하며, 전 계층의 소득 증가와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자본주의 황금시대’였다. 전후 전세계 총생산의 절반 이상이던 미국이 자신의 생산력과 달러를 퍼부은 것이 한 축이었다.
하지만 전후 부흥 호황의 동력이 끝나가면서 미국의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남발됐던 달러는 그 황금시대를 떠받치기에 역부족이 됐다. 전후 국제결제 체계의 근간이던 금 1온스당 35달러라는 금태환 제도의 폐지가 1971년 8월15일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발표되며, 전후 자본주의 교역 및 결제 체제였던 브레턴우즈 체제는 종말을 고하기 시작했다.
달러 등 각국의 통화는 시장에 맡겨져, 경쟁적으로 평가절하됐다. 달러에 연동됐던 석유도 가격 상승의 압박을 받다가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나라에 대한 석유금수를 발표하며 폭발해버렸다. 아랍 산유국들이 무기화한 석유의 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한꺼번에 4배가 뛰며 전세계를 엄습했다. 이는 그 뒤 10년 동안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장기 불황을 낳으며, 지정학적 격변과 세계화의 문을 열었다.
첫째, 자본의 이동을 규제하며 국가주권을 우선시하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완전히 붕괴되며, 자본이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 자유화에 바탕한 세계화 조류가 시작됐다. 둘째,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은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지식경제로 이행하는 혁신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소련 등 사회주의권 몰락의 씨를 뿌렸다. 고유가는 1960년대 초부터 중공업 경제가 동맥경화를 일으켰던 소련에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경제는 지식경제로 혁신하는데, 세계 최대 산유국 소련은 고유가에 취해 아프가니스탄 등 제3세계에 개입하며 국력을 과잉전개했다. 1980년대 들어 유가가 폭락하자, 소련은 더 버티지 못하고 몰락했다. 미국의 소련 현대사가 스티븐 코트킨 프린스턴대 교수는 “오일 쇼크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라고 평했다.
한국도 오일 쇼크에 휘청였지만, 장기적으로 기회를 잡았다. 산유국 달러 등 미국 밖에서 넘쳐나는 ‘유로 달러’는 중동에서 건설붐을 일으켜 한국 기업들이 향유했고, 선진국이 철수하는 제조업을 한국이 넘겨받을 수 있게 했다. 한국은 ‘제2의 일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제조업 강국이 됐다.
오일 쇼크가 문을 연 세계화가 역류하고 있다. 국경을 넘는 자본의 폭주가 부른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화는 이미 파산을 예고했고, 코로나19가 그 도장을 찍고 있다. 전쟁 때에도 상상하기 힘들던 국경봉쇄나 국내에서 이동제한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오일 쇼크 때는 주유소 앞에서만 줄을 섰지만, 코로나 쇼크에서는 모든 생필품 상점 앞에 장사진이다. 선진국들이 더 우왕좌왕하며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인다.
이 위기에서 한국의 방역이 각국과 외신들이 평가하는 롤모델이 되고 있다. 오일 쇼크 때 한국은 효율적이고 우수한 노동력으로 기회를 잡았다면, 코로나 쇼크 때는 그에 더해 사회의 민주주의적 작동과 효율적이고 탄탄한 산업 능력에 힘입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은 한국이 중국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봉쇄나 격리 조처 없이, 사회와 시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우수한 방역 체계를 가동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이 가장 빠르게 개발한 진단키트 등도 아이티산업 이후 한국이 주력하려는 바이오산업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오일 쇼크가 중동붐 등으로 한국의 대기업을 만들었다면, 코로나 쇼크는 한국에 새로운 강소기업들을 만들 토양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오히려 앞장서는 세계화 역류가 빚는 그 빈 공간은 코로나 쇼크 대처에 모범이 되는 한국에는 기회이다.
Egil@hani.co.kr